통증을 길들이다 과학과 사회 10
베르나르 칼비노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통증을 길들이다>는 현대 의학의 목표가 통증 제거라고 선언하는 책이다. 사실 그동안 의료계에서 통증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최근에야 통증은 인식되었다. 제거의 대상으로 말이다. 이 책에는 프랑스 의료계의 최신 경향이 담겨 있기도 하다.(진취적인 의대생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통증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은 의사,  과학자, 간호사, 문학가, 종교인, 철학자의 글들을 모았다. 이들은 각각의 관점에서 통증을 고찰한다. 

1부의 내용은 의학 전공자들이 볼만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일반인들도 관심 있게 볼 수 있다. 의학 전문 용어가 나오는 부분을 술렁술렁(대충) 넘기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도 나온다. 이를테면, 태아에게도 통증과 고통이 있는지 살펴보는 부분이 그렇다.  사실 태아에게 통증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로운 문제제기로 다가왔다. 

이 책은 태아가 자극을 지각한다고 설명한다. 임신 20주부터 태아는 자극의 지각에 필요한 모든 기관들, 즉 통증 감각을 통합하기 위한 수용체들, 통증 메시지 전달 경로, 피질 구조들을 갖추게 된다고 설명한다.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이는 의료 윤리 문제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즉 의료 시술시 태아의 통증을 고려하게 만든다.

이 책은 통증의 소통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특히 장애를 지닌 사람의 경우에 말이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고독한 감각이다. 내가 고통스러운지 여부나 고통스럽다는 사실은 나만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만이 안다. 그래서 고통은 나를 고립시킨다. 

기존에 의료계는 환자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교, 통증에 대해 얘기할 때 그들이 드러내는 것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이 점을 반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통증을 제거하는 첫번째 무기가 존중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의대에서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통증의 제거에 신경쓰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최근 의료계에서 통증의 제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철학계로 방향을 돌려보면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통증은 인생을 밝혀주는 일종의 자극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또 바타이유의 말처럼, 인간은 죽음과 통증의 관조에서 언제나 만족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이 책도 통증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펴본다.

통증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도 한다. 인간은 언제나 고통스런 상황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존재의 고통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묻기도 한다. 문제는 종교계가 의료를 거부하고 불필요하게 고통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고통은 문학에도 큰 영감을 준다. 문학은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언어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에서 요양소에 있는 결핵 환자들의 통증을,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둔부 부상으로 인한 통증을 얘기하며,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잘못 치료된 부상의 휴유증의 통증을 얘기한다. 이 책은 또 고통의 전달 불가능성이 문학의 도전 과제였음을 알게 해 준다.

여러 저자의 짧은 글을 모아 놓은 책으로, 고통이라는 소재로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한번쯤 읽으며 사고를 새롭게 해 본다면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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