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은 어쩌다
아밀(김지현)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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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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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현실과 거리가 멀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아밀의 두 번째 소설집 『멜론은 어쩌다』는 소설 속 배경과 현실 속 이야기를 교차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집이었다. 여덟 편의 단편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현실의 차별과 억압을 비춘다.

1.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기영과 미나의 관계를 통해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묻는다. 레즈비언이자 뱀파이어인 미나는 철저히 소수자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고, 기영은 그런 미나와의 관계를 ‘우정’이라 믿으며 애써 감정을 외면한다. 둘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고, 또 사랑을 자각하지 못한 채 우정을 이어간다. 우정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작품은 사랑과 우정의 경계선에 대해, 나아가 소수자에 현실을 되새기게 한다.

2.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강렬한 제목처럼, 부치인 영민이 섹스 로봇 리아를 통해 관계와 사랑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첫사랑의 실패로 상처받은 영민은 여성과의 관계에 자신감을 잃지만, 리아와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와 감정은 근미래에 우리가 맞닥뜨릴지 모를 윤리적 질문을 선명히 던진다. 성적 욕망, 인간의 존엄,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문제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3. 〈노 어덜트 헤븐〉
작품은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멜론(재훈)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아이는 엄마의 재판을 통해 이승에서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겪어온 억압과 아픔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정상성과 비정상이라는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억누르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만의 순수한 천국은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유토피아로, 우리에게 진정한 성장은 무엇인지, 반성과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지 묻는다.

《멜론은 어쩌다》 속 인물들은 서툴면서도 사랑스럽고, 낯설지만 묘하게 친근하다. 경쾌한 외피 속에 숨겨진 질문들은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의 문제를 환기한다. 아밀은 환상과 유머를 빌려 지금 이 시대의 차별과 혐오를 선명히 드러내고, 동시에 더 나은 가능성의 세계를 제시한다. 모든 소재가 독창적이고 인상 깊어 몇 개의 작품은 장편화되기를 바라게 된다. (제발이라는감정...) 아밀의 세계 속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사랑을 지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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