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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특히 미디어 부분에서 그랬다.(한 축으로 기자가 나온다)
나는 우리나라의 뉴스들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사고나 사건이 발생할 경우 미디어는 그 내용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할 뿐이었다. 대책이나 그 후의 이야기는 내놓지 않았다.
개인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찾지 않으면 우리는 사건의 결말을 알지 못한다. 하긴 정보를 찾아도 결말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가, 난 우리나라에 미해결 사건이 그리 많은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냄비근성.
솔직히 우리나라 국민성이 아니라 미디어의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팩트던 아니던 상관하지 않는다.
고소할테면 고소하지. 그것도 아니면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는 심리인지 우리나라의 미디어는 무례하다. 그것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하지만 외국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미디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피해자던 가해자던 자신들의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피를 맛본 피라냐처럼 들러붙는다.
예전에 미국에서 어떤 아내가 남편의 강압적인 성관계를 거부하기 위해서 가위로 남편의 성기를 자른 사건이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후에 남편이 버젓이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이나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으며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돈받고 파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여튼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남편을 철썩같이 믿고? 혹은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또한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든 남편.
이 부부는 별문제없이 살고 있는데 한 소녀가 실종되고 남편이 용의자 선상에 떠오르며 그동안 유지되어온 관계에 미묘하게 금이 가게 된다.
아내를 전부 통제하려는 남편, 통제당하는 것이 남편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아내. 이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서린다.
전혀다른 분위기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토마스 H.쿡의 '붉은 낙엽'(이 책 또한 한 소녀가 실종되면서 자신의 아들이 용의자가 된 상황에서 가족의 의심과 붕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이 떠올랐다.
과연 남편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 책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용의자 남편의 부인, 남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형사, 특종을 사명으로 아는 기자, 아이의 엄마 등의 시선을 교차하며 진실로 가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극적인 사건과 자극적인 면이 없지만 나는 오히려 이 책이 그래서 더 극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어느날 내 가족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되었을때, 혹은 내 가족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때, 또한 미디어에게 무차별 공격을 받아 집밖을 나가는 것이 공포로 바뀌었을때. 그것은 바로 일상이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공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