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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품격
김기석 지음 / 현암사 / 2025년 3월
평점 :
최소한의 품격 / 김기석 / 현암사

작가 소개
김기석 목사님은 청파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시다가 2024. 은퇴하셨다. 종교적인 깊이 뿐아니라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음은 그의 설교나 지은 책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깊은 울림이 있고, 또 문학적으로도 표현이 아름답기도 하다.

책 소개
이 책은 2021년부터 현재까지 작가가 <국민일보>, <경향신문>, <월간에세이>에 게재한 칼럼을 주제별로 분류해 재구성한 책이다.
목차
1부 삶의 지표를 일어버리다
2부 삭막하고 곤두선 전쟁터
3부 다시 채우는 힘
총 3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칼럼을 엮고 있다.


인상적인 구절들과 나의 생각들
1부
2. 우리는 지지 않는다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야만의 시대가 열린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사람들의 굳은 약속은 시간의 풍화 작용으로 누렇게 바래고 말았다.”
요즘 사회는 정의가 사라진것만 같다. 부도덕함이 득세하고 이기적인 욕구를 위함이 당연시 되는 상황들이 많다. 전반적인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보니 나도 어느 순간 정의나 도덕, 배려나 더불어 사는 삶 같은 가치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 이익을 취할지 혹은 어떻게 하면 내 이익을 뺏기지 않을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이미 야만의 시대가 열린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는 핑계로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서 이제 정의도 잊어버렸고 그 결과 야만의 시대가 열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장면들이 지나갔다. 세월호도 이태원사태도 최근 항공기 추락 사건도... 희생자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남 일’ 그저 ‘안타까운 일’ 뉴스에 떠들썩 할 때만 내 마음도 일렁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바뀌어야 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해!’ 그러나 새로운 뉴스꺼리로 바뀌면서 금새 나도 잊었다. 나는 반복되는 나의 일상만 살아간다. 이렇게 ‘쉽게’ 잊어버리는 나 같은 개개인들이 어쩌면 야만의 시대의 문을 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바라보며 탄식만 할 뿐 내가 그 정의롭지 못한 사회로 이끈 수많은 개개인 중 하나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이 글귀를 통해 이 사회의 정의가 남이 만들어주는 정의가 아니라 평범한 개개인들이 만들어가는 정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4. 욕망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굉음
“삶의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는 자각이었다. 실패와 고통을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심연의 가장자리로 떠밀려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검질김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
요즘 내가 주로 생각하는 내용이라서 더 눈이 갔다. 실패와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냥 흘려들으면 당연한 말인듯하고 많이 들어본 말인 것 같다. 그런데 내 삶에 적용시켜보면, 참 쉽지 않은 말이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부단히 애쓴다. 고통을 부정하기 바쁘다. 실패와 고통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미 내 삶에 들어온 실패와 고통을 몰아내기 위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다. 만회하려고 애쓴다. 요즘들어 그런 나 자신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패와 고통 그 자체보다도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노력과 시간들이 어쩌면 나를 더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받아들이자 함께 공생하자. 온전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난 온전함과 완전함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완전하지 않아도 온전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나를 안아주고 나의 흠을 받아들이며 흠이 있는 완전하지 않은 나여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10. 불온함을 잃어버릴 때
“흔들림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동일성 속에 머물 때 안정감을 느끼지만, 낯선 세계와 만날 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그 당혹감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개시 가능성이다. 대립되는 세계와의 만남이 조성하는 긴장감 속에 머물 때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정신의 탄력이 증대된다.”
“경계선 위에 서서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팔을 벌릴 때 자기 갱신이 일어난다.”
“낯선 세계에서 외인으로 산다는 것은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취약하기에 자기를 늘 성찰하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이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익숙한 세계를 떠난 사람이라야 평화의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참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안정감이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통제가능한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을 걸어도 어느새 안정감을 추구하는 나는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호기심이 뻗어 나가는 것을 허락하고, 이내 반짝반짝 빛나던 호기심은 익숙하고 평범함으로 바뀌어버린 채 사라진다. 그 과정이 스스로를 지루하게 만든다. 그래서 새로운 자극에 끌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안정감을 추구하는 강력한 마음이 통제불가능한 것들을 다 잘라버린다. 새롭고 낯선 것들도 통제라는 채로 걸러내면 평범하고 익숙하고 지루한 것이 된다.
그렇게 새로운 것은 익숙한 것이 되기에 갱신이 어렵다. 내 안엔 고인물만 넘쳐나니 새로운 것을 더 낯설게 느끼게 된다.
위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런데 희안하다. 안정감! 불안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 상태를 누리기 위해 해왔던 통제들로 인해 오히려 나는 더 불안해졌다. 나 아닌 다른 생각과 타협도 어렵고 공존도 어려운 것이다. 외부와 평화롭지 못한 상태가 나를 더욱 불안하고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낯선 세계에 살면서 취약해져서 외부와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함에도 나는 나만의 철옹성을 세워 외부 세계를 보지도 않으면서 내 안에 갇혀 있으며 외부와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결과 나의 상식 밖의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고립되지 않고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나의 철옹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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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만 다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을 하다보니 더디게 읽힌다. 그런데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배만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한 입 한 입 먹으면서 그 맛의 다채로움을 느끼듯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려 보며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맛보는 것에 큰 기쁨이 있다.
사실 요즘 나는 깊이 있게 생각을 끌고 갈 힘이 약해질대로 약해져서 찰나 같은 짧은 시간 짧은 묵상만 가능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구절 구절 떠오르는 생각들을 유기적으로 엮을 힘은 없고 그때그때 짧은 깨달음, 짧은 이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좋다. 요즘처럼 상념에 빠지는 것이 낯선 시대에 잠시나마 상념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