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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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일기장은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가는 1950년대 이탈리아인 40대 여성 발레리아가 주인공이다. 여성에게 (그리고 남성에게도) 마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은 모양이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가부장제와 사회의 속박에서 되본 적 없는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된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게도 어떤 욕망이 있었다거나 그 욕망이 억눌려진지도 잘 모른 채로
어느 새 마흔을 훌쩍 넘어가던 주인공은 십대시절의 자신을 깡그리 잊은 채 가족 구성원으로서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살다가……
어느 날 계산대의 까만색 공책 한 권을 집어들고 오면서 ‘금지된 나’를 깨운다.
그저 바쁘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 속에서 틈을 내어 까만색 공책을 펼치자 요염하게 나를 바라보는 순백색의 종이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그렇게 심드렁하게 시작하다가 소소하게 끄적이다가 감추기를 몇차레 하다보니 점점 설레고, 일기를 쓰는 시간만 기다리고, 애태우고, 거짓말로 시간을 애써 만들고 짜릿하게 감추기를 몇 달 ……
급기야 자신이 딸아이의 인생을 질투하고 방해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화들짝 데여 일기장을 버려야된다는데에 이른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 사이처럼 애증의 연속 같은 금지된 일기장.

그런 일기장 다들 한번 쯤 가져봤을 듯 싶다. 십대시절 우연히 보게 된 엄마의 일기도 떠오른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몰래 훔쳐보던 엄마의 일기는 30대 후반 여성이자 엄마였던 한 사람의 분투의 흔적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래서 그 때의 나는 자물쇠로 잠그는 형식의 수첩에 일기를 적었다^^)
온갖 해소되지 않은 미성숙한 감정쓰레기통으로 얼룩졌지만 그 때의 내모습을 그렇게 발견하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휘갈겨서라도 기록한 것을 훗날 읽어보니 한결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어서 흠칫 놀랐던 적도 있다. 그것이 어마무시한 일기장의 힘, 기록의 힘 아닐까.
우리 모두는 어떤 자리, 무슨 자격, 역할이라는 굴레만 덧 씌우기 이전에 한 사람의 오롯한 정체성을 깨닫고 지켜나가며 함께 성장해야 할 테니 말이다.

책의 일부만 읽고 쓴거라 다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지금 40대 중반 쯤인 전업엄마 혹은 워킹맘 그렇지만 나와 내 엄마 그리고 내 자식을 일직선상에 놓고 떠올려보면서 어떤 의식화 과정을 가져보고 싶은 분들, 나도 내 자녀도 잘 키우고 싶은 분들이 읽어보면 어떨까 한다. 가족이기에 내 자식이기에 제일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나 70여년 전 어떤 여성의 일기장을 읽다보면 그동안의 나란 사람에 대해서 각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고, 깨어있지 않고 발전하기를 거부하면 결국 고여 썪는 건 나다.

나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인생 앞에 최근 몇 년 일기를 전혀 쓸 수 없었는데 그럴수록 무언가 소진되었거나 힘들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도 그저 빈 공책 한 권 아무데나 아무말이나 써봐야한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라는 또 한 명의 새로운 뛰어난 작가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계속 작품이 번역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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