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53
봉주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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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다시, 이미 알고 있는 생을 기대하게 한다.

‘너를 알지만 모르던 그 때,
사랑을 했지만 다시 사랑하게 될 그 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고,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것 처럼
시간을 거슬러 뒤엉켜버리는 기억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어떤 마음을 내어줄까.
나의 삶은 어떤 반복을 이어갈까.

봉주연의 시는 삶이라는 기다란 선 위에 오른 우리가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삶의 장면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기대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미래를 꿈꾸는
일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복되는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기에
내일의 시간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알면서도 우리는,
똑같이 사랑을 하고 눈물짓고 같은 미래를 만들어간다.
이미 알면서도, 새롭게 모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험의 의미는. 매번 새롭게 남겨지는 감각은.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상처일지라도,
너의 웃는 얼굴이 그리워, 그 얼굴이 보고싶어,
다시 한번 상처받기를 자처한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좋았다고,
삶이란 나에게 충만한 순간을 선물처럼 건내주고,
웃는 너의 얼굴이 좋아 이 생을 반복한다고,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생을 기대한다고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 생은 반복으로 지탱된다.
삶의 어느 기점을 지나면 대부분의 일들이 예측 가능한 선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이미 경험한 미래’ 앞에서 사람은 기대를 잃고 무력해지곤 한다. 그리고 시는 이와 정반대의 일을 한다.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마치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이는 것. 다 해본 일을 처음 해보는 듯 즐거워하는 것. 끝을 알고 있는 사랑일지라도 일단 빠져보는 것. 서둘러 짐작하려 들지 않는 것. 대화하는 중에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것. 지루하단 눈빛을 보내지 않는 것. 이런 순수, 혹은 무지. 이런 아둔함, 혹은 용기가 삶을 반짝이게 만든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이란 물살을 반짝이게 만드는 물비늘.

어떤 과거는 빛나는 미래가 된다.
나는 주저 없이 바닷물에 바짓단을 적신 채로,
모래사장에 주저않은 친구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웃는 채로,
수없이 반복되는 미래의 장면. ”

p162-163, 미래의 냄새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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