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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봄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두 권이 함께 출간됐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전적 소설인 <두번째 봄>, 그리고 <인생의 양식>이다. 전작들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표지는 역시 예쁘다.(여자 취향 저격!) 창틀을 손을 얹고 있는 여자는 어딘지 답답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보이지 않아 미스터리한 느낌도 든다.
이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전적 소설이다. 전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두번째 봄>에 등장하는 인물과 환경 등이 자서전에 나온 내용과 똑같아서 조금 놀랐다. 나이가 들수록 물건에 대한 강박이 심해지던 애거사의 할머니도 소설에 똑같이 등장하고, 엄마와 이집트에 갔던 경험이나 파리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배운 것도 그렇다. 원작의 출간 년도를 확인하니 애거사가 30대 후반에 쓴 것 같은데(이 책의 주인공인 셀리아도 30대 후반이다), 살면서 어느 정도 시련을 겪고 또 잘 헤쳐나간애거사가 자신의 반생을 돌아보고 중간 정리를 하는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양도 적당해서 편한 마음으로 훅 읽기 좋고, 자전적 내용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에 굳이 애거사의 삶을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다.
소설은 셀리아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따라가며 그린다.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가족의 품에서 성장한, 그래서 착하고 순진할 수밖에 없던 셀리아는 커서 가족의 그늘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고, 인생의 시련을 겪는다. 자신의 무력감에 실망하고,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고,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러다 삶에 지쳐 사는 일에 미련을 거두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로 걸어간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 해도, 원래 남의 중병이 제 고뿔보다 못한 법이다.
그렇게 위태로운 상태의 그녀를 구제한 것은 바로, 이 소설을 집필한 (것으로 설정된) 한 손을 잃은 젊은 초상화가 래러비다. 래러비는 우연히 셀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위태로운 갈림길에 선 그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래러비는 왜 셀리아에게 그런 마음을 가진 걸까? 나는 래러비의 상태가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설명해주지 않을까 싶다.
한 손을 잃은 젊은 초상화가. 초상화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어디 먹고살기만 했을까. 작가에게 글이, 가수에게 노래가 그러하듯이, 그에게 그림은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래러비는 손을 잃음으로써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수단을 잃었다. 삶에 대한 기대, 희망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는 또 '젊었다'. 자신의 그 창창한 젊음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시절 그에게 젊음은 절대 축복이었을 리 없고, 결국 그는 현재의 셀리아가 생각하는 하나의 출구를 생각했었다. 그러니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괴로움을 겪는 셀리아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터. 인간에 대한 연민, 바로 거기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되는 것이다.
셀리아는 좋았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녀가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떠올린다면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의 끝에 다행히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구제해줄 사람을 만났고, 그로 하여금 그녀가 두려워하던 남은 삶을 향해 어려운 한 발을 내딛는다. 그 이후의 삶이 ‘두번째 봄’이 될 수 있을까?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니 모르겠다. 하지만 생판 남인 그녀에게 귀를 기울여주고 연민과 애정을 가져주는 그런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그 다음 이야기에도 따뜻한 기운이 돌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힘들고, 지루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견디며’ 나름의 삶을 일궈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셀리아의 삶, 아니 우리 모두가 살아내는 삶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