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 아이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악몽>을 읽고, 조이스 캐럴 오츠는 단편도 정말 잘 쓰는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펼쳐 든 <이블 아이>는 그 이상이었다. 오츠가 2013년에 발표했다는 <이블 아이>의 원제는 <Evil Eye: Four Novellas of Love Gone Wrong>로 ‘잘못된 사랑에 관한 네 편의 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에는 ‘잘못된 사랑’에 관한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이블 아이>와 <아주 가까이 아무때나 언제나>이다. 특히 표제작 <이블 아이>는 오츠가 말하려는 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면서도 신비스럽고 공포스러운 오츠만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부모를 잇따라 잃고 세상에 버려졌다는 생각으로 우울증을 앓던 마리아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주던 직장 상사 오스틴에게 사랑을 느끼고 속전속결로 결혼하지만, 그와 함께 살게 되면서 오스틴이 조급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점점 움츠러들게 된다. 그녀의 불안감은 오스틴의 첫번째 아내가 등장하면서 구체화되는데, 한쪽 눈이 없는 그녀는 마리아나에게 오스틴에 대한 저열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에게서 빠져나오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미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막상 그에게서 빠져나오는 게 두려운 마리아나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본산 가리개와 아프리카 가면, 터키의 이블 아이 등이 전시된 거실 풍경이나, 깡마른 몸에 얼굴은 화려하게 화장하고 한쪽 눈은 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첫번째 아내의 모습 등 이미지에서 풍기는 기묘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도 인상 깊었다. 거기에 융화되지 못하고 좌불안석하는 마리아나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안쓰러운가.

<아주 가까이 아무때나 언제나>는 자격지심과 자기연민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살아오던 리즈베스에게 멋지고 똑똑한 남자친구 데즈먼드가 생기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데즈먼드가 연락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횟수가 늘고 점점 더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두려움이 든 리즈베스는 어색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그와의 만남을 피하게 된다.

 

“나중에 하면 안 돼? 아니면 내가 기다릴까? 그 ‘일’을 끝내려면 얼마나 걸리는데?”
나는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데즈먼드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내가 마루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가면 데즈먼드에게서 빠져나와 집안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아빠도 곧 돌아오실 거고, 오늘은 저녁식사를 일찍 할 거야. 시시콜콜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에게 위기 같은 일이 일어났어. 나이 많은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시는데……”
데즈먼드를 단념시키는 데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마음이 상한 듯 이죽거리며 돌아섰다.
“그럼 잘 있어, 리즈베스! 행복한 가족 위기를 맞기를!”

 

하지만 이렇게 데즈먼드를 보낸 리즈베스는 곧바로 후회하며 “일생일대 최악의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데즈먼드는, 예쁘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자신을 좋아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이블 아이>에는 위의 두 작품 말고도 아버지를 증오하는 스무 살 아들과 수동적인 어머니의 관계를 그린 <처단>, 성 공포증에 시달리는 여자와 그녀의 소유욕 강하고 공격적인 애인의 관계를 그린 <플랫베드>가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을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약한 여자’와 ‘강한 남자’의 ‘종속적인 관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오츠가 꾸준히 천착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이기적이고 강압적인 남자들은 여자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제멋대로 굴고, 힘없고 약한 여자들은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것 같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관계를 종속적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일그러진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느 한쪽만의 영향이 아니라는 것을, 오츠는 연약하고 수동적이고 자기 확신이 없는 여자들을 통해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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