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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포토스의 배 - 제14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쓰무라 기쿠코 지음, 김선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학과 선택에 많은 시간과 고민을 들였다. 그때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꼭 내가 배운 것과 연관되는 일을 할 거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 내가 꿈꿔온 삶이었다. 물론 가능할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학과에만 들어가면.
요즘은 취업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고 많이 배우는 일을 많은 일을 할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고 칼퇴와 주말이 보장되는 일을 할지 잘 고민해봐.”
그리고 요즘은 내가 배운 것으로 돈을 벌면서도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나를 보며 스스로를 이렇게 합리화한다.
“뭐든 일이 되면 다 힘들지, 뭐.”
쓰무라 기쿠코의 《라임포토스의 배》에는,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세계일주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분투하는 짠내 나는 일상을 담은 동명의 소설과, 상사의 괜한 트집과 심한 언어어폭력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직장 생활을 그린 소설 <12월의 창가>로 구성되어 있다. 두 편을 읽으면서 나는 열렬한 공감과 분노를 담아 나의 짧은 직장 생활을 돌아보았다. 특히 <라임포토스의 배>의 주인공은 나처럼 같은 직장을 4년 동안 다니고 있는, 그렇지만 아직도 그 연차에 한참 못 미친다고 여기는 동갑내기 친구이기에 나의 더더욱 특별한 애정을 샀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우리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지루한 듯 이어가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 알맞게 길들여져 푼돈과 비생산적인 시간에 벌벌 떨고 있었고, 그런 자신을 혐오하며 이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도피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끔 떠올랐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려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대학만 들어가면 나만의 배를 저을 거라는 포부는, 아니 공상이라 해도, 이제는 없다. 그만큼 나는 겁을 먹었고, 움츠러들었다. 꿈은 꿈, 일은 일이고,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은 그만큼의 나의 무언가를 내줘야 하는 일임을 안다.
돈 때문에, 돈을 쓰지 않으려고, 무익한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 집에 갈 여유조차 없다. 세계일주 비용은 순조롭게 쌓여갔지만 나가세는 왠지 모르게 허무함을 느꼈다.
우리는 왜 일을 할까?
자아실현, 소명 의식, 이런 교과서적인 답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지금의 이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일 텐데, 육체적인 건강만이 건강의 전부가 아니고, 내일의 행복이 오늘의 행복보다 더 값지다는 확신은 없으며, 행복이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편안하고 유쾌한 관계가 아니겠느냐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가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일을 때려치운다고 행복할까? 혼자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면? 혹은 딱 먹고 살 만큼만 벌고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쓴다면? 물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을 맛볼 수는 있겠지만,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자만의 고통이 다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지금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 지금 행복한 것. 평생을 두고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이지만 어차피 계속 풀어야 하는 거라면 매일의 고통보다는 매일의 행복을 쌓아가는 편이 더 낫겠지 싶다. 답은 심플하다. 그걸 몰라서 우리는 내내 괴롭다.
늘 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쉬면 자기가 근본부터 변할 것 같아 두려웠다. 쉬고 싶으면서도 비는 시간이 싫어서 일을 늘렸다. (...) 이전 회사를 그만둔 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무렵의 초조함을 생각하면 열이 오르는데도 사지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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