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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도 괜찮아 - 삶을 바꾸는 일상 유유자적 기술
박돈규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6월
평점 :
퇴사한 지 일주일.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느라 여전히 분주한 하루하루지만 일요일 저녁이 되어도 일주일 전처럼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심하다 싶을 만큼 일요병에 시달렸다. 일요일 정오만 지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우울해졌다. 지나고 나니 왜 그렇게 스스로를 압박하며 살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업무 시간에 일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잖아!
제목만 봤을 때는 힐링 에세이인 줄 알았다.
월요일도 괜찮아, 부담 좀 내려놔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토닥토닥...
펼쳐 보니 아니었다. 오히려 힐링 에세이보다는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더 강했다.
저자는 일과 행복, 돈, 걱정, 고독, 사랑, 무기력, 여행, 나르시즘, 죽음 등등 우리 삶을 음미하는 데 필요한 몇몇 키워드를 골라 그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나직이 풀어 놓는다. 문화부 기자답게 책이나 영화, 미술, 뮤지컬 내용을 빌려 와 말하는 부분도 많은데, 특히 유발 하라리나 알랭 드 보통의 말을 차용한 부분이 많다.
책을 읽으며 너무 뻔한 말을 한다 싶은 부분도 있긴 했지만, 무릎을 칠 만큼 공감한 문장들도 많았다. 일에 매몰된 삶을 살았던 내게 그런 문장들은 단연 일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라는 카뮈의 말처럼, 영혼이 담긴 일을 찾는 것은 현대인의 열망이다. (...) “현대인이 종교처럼 집착하는 ‘천직에 대한 열망’은 철저히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 통렬하다. 우리가 인생의 순간순간을 열정적으로 불살라야 한다는 그릇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_26쪽 일/성공’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자 했던 열여덟의 내가 있었다. 이런 헛된 ‘천직에 대한 열망’ 때문에 고통받으며 조금씩 꿈에서 빠져 나오는 중인 서른의 나는 열여덟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원래 일이 되면 다 힘들어.”
물론 사람을 만나는 일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기자나 마케터 같은 일을 즐겁게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도로 싫은 부분들을 피해서 직업을 구할 뿐, 어떤 일을 하는데 최적인 성격 같은 건 없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적성에 딱 맞는 일(거기다 복지도 맞고 보수도 맞는 일)을 찾다가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계속 부유하기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뭘 했나? 만들어 먹었다. 야근의 굴레에서 벗어나 칼퇴를 하게 되는 날이면 약속을 잡기보다 집에서 부족한 솜씨지만 저녁을 만들어 먹었고, 요리를 하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도 조금씩 풀렸다. 여기 그에 대한 문장도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미국 작가 마이클 폴란은 이렇게 덧붙였다. “요리는 일과 여과 활동에서조차 사용하지 않는 감각에 우리를 연결한다.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요리를 하는 동안 손은 바쁘고 하루의 근심은 사라진다.” (...) 음식은 단순히 ‘연료’가 아니다. 어떤 심리적 수요에 대한 응답이고 기울어진 영혼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행위일 수 있다. 음식에 치유의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_178쪽 음식이라는 심리학
이 문장을 읽으니 다른 주제지만 또 이런 문장과도 맞닿는다.
(연애 칼럼리스트 곽정은은) 식사로 또 술자리로 이어지면서 마음의 거리와 몸의 거리가 함께 가까워지던 기억을 풀어놓는다. 배가 고픈 채 서로에게 빠지는 일 같은 건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곽정은은 “같이 밥 한번 먹을래요?”라고 말하는 남자들의 말이 그리 듣기 좋았던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욕정을 또렷이 읽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썼다. 이쯤 되면 식탁이란 침대로 가기 전 남녀가 거치게 되는 가장 에로틱한 전희의 장소랄 수 있다. _277쪽 섹스
역시 연애고 뭐고 배부터 든든해야 하는 법!
저자는 우리 삶을 감싸는 몇 가지 키워드의 꼬리를 물고 우리의 삶을, 그리고 그 삶이라는 망망대해를 아무 장비도 없이 유영하는 우리를 보여준다. 나만 느끼는 것 같아서 더하던 불안감,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물론 저자에게 사유의 물꼬를 터준 유명한 철학자들과 작가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구나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단박에 월요병이 사라질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자처럼 삶의 단면들을 통찰하고 사유하는 힘을 기르다 보면 주위의 모든 것이 압박보다는 흥미로운 대상으로 변하는 매직을 차차 경험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고생한 사람만 칭찬하는 분위기는 모두를 고생하게 만든다. 웃으며 설렁설렁 일하면 더 쥐어짤 힘이 남아 있을 거라고 넘겨짚는 것이다. ... 직장인은 저마다 사무실에서 그런 무아지경의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한국 사회에는 특히 야근이 미덕이라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고도 성장기도 아니고 일촉즉발의 상황도 아닌데 사무실에서 눈치 보며 퇴근을 미룬다.
스마트폰과 sns덕에 인맥은 더 넓어졌다. 하지만 깊이는 그만큼 얇아졌다. 쉽고 빠르게 유통되지만 질이 낮은 ‘패스트푸드 정보‘에 정신을 팔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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