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던 터라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 어떤 내용일지 많이 기대했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바로 <딸은 딸이다>다. 표지나 제목만 봐도 전작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했는데, 빙고. 역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답게 날카롭기가 그지없다. 애거사의 펜이 닿으면 더없이 친한 모녀 사이도 이렇게 발가벗겨지는구나. 무섭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딸 세라와 함께 사는 앤은 우연히 리처드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리처드의 고루하고 보수적인 면만 보고 그를 싫어하게 된 세라는 엄마의 재혼을 반대하고 나선다. 세라의 노골적인 싫은 내색에 아이의 기분을 맞춰 주던 리처드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던 둘은 일부러 서로의 신경을 긁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우는 데까지 이른다. 그리고 끝이 없는 싸움 속에서 괴로워하던 앤은 결국 딸을 위해 리처드와 헤어진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1부의 내용이자 갈등의 발단 부분이다. 뒷부분에서 이어지는 격렬하고 빠른 갈등에 비해 1부는 짧은 기간의 일을 느린 속도로 세세하게 보여 준다. 뒷부분의 진행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와 비교하면 앞이 다소 길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읽어 보면 1부에서 언뜻 비친 인물의 말이나 가치관이 뒷부분의 갈등, 심리 묘사와 이어지며 중요한 부분으로 대두하는 경우가 많다. 한 줄 한 줄 그냥 쓴 문장이 하나도 없구나 하며 대가의 손길에 감탄, 또 감탄!

 

사실 내게는 이 소설이 공포소설처럼 무서웠다. 지금까지 나는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할 때,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래, 네가 좋다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었다. 조금 더 설득해볼 걸 그랬나, 억지로라도 일단 하게 해볼 걸 그랬나, 하는, 정말 나만 생각한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 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무섭게 깨달았다. 욕망을 거부당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 억울함과 서러움이 쌓여 자신을 어떻게 갉아먹고 남에게까지 화살을 돌리는지 말이다.

누군가에 의해 희생(바라는 게 있는 희생이라면 희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당했다고 생각한 앤의 마음은 그 이 년 동안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까. 매일 밤 잠자리에서 혼자 꺼내 보고 삭히고 울었을 앤의 수많았던 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 세월을 다 그녀에게 돌려주고만 싶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포기들이 얼마나 당연했던 것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는지 정말 절절하게 깨달았다. 나의 아집이 누군가의 일생을 망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번쩍했다. (물론 이와 관련해 작품 속 로라 여사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도 남의 인생을 정말로 망칠 수는 없어. 멜로드라마 시늉 말고 감정에 빠지지도 마.” 라고 말씀하셨다. 이 역시 얼마나 맞는 말인가!ㅠ_ㅠ 정말 그렇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간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이자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그런 책이다.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으면서도 느낀 건데, 애거사 크리스티는 나한테 필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지금의 내게 필요한 인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콕 집어서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터무니없는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내 독선과 아집을 꼬집어주려고 이 책이 나온 것만 같다. (그것도 이렇게 재미있게 말이다ㅜㅜ 아주 그냥 푹 빠져 읽었다ㅜㅜ)

이것이 내가 이 시리즈를 계속 기다리는 이유이자 끝까지 꼭꼭 씹어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되겠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다음 작품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ㅠ_ㅠ 이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책보다도 내게는 귀한 책이니까. 말 그대로 원샷 원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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