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독특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읽어 보니 내용이 더 독특하다. ㅎㅎ
‘검정고양이’는 미학을 연구하는 스물네 살 교수의 별명이고,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라는 여자 주인공은 검정고양이와 동갑의 조수이자 에드거 앨런 포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다. ‘나’의 주변에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때마다 검정고양이는 포의 작품을 이용해 그 일의 진상을 파헤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이 등장하니 뭔가 고전적이고 문학적인 느낌을 풍기면서도 추리 형식이라 지루하지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신기한 생각이 들었는데, 포의 작품과 이 소설의 에피소드가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포의 작품을 토대로 썼으니 당연히 잘 맞아떨어지겠지 싶으면서도 자꾸 포를 의심하게 되는 건, 이 작품에서 보여준 포의 작품 해석이 새롭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시절에 문학작품(특히 시)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시에 밑줄을 긋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해줬다. 한용운의 『임의 침묵』에서 ‘임’은 해방이자 조국이자 연인이자 부처이자, 진리요, 깨달임이라는 식이다.ㅎㅎ 그때 친구들이랑 소곤거렸던 말은, “우와, 시인은 이런 걸 다 알고 썼을까?” 이다. ㅎㅎ
여기서 포를 의심하게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우와, 포는 이런 걸 다 알고 썼을까?”^^
포가 이런저런 해석을 염두에 두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정고양이의 미적 추리는 그만큼 일리가 있다. 예를 들어 「물과 레토릭」이라는 단편은 포의 「마리 로제 수수께끼」와 겹쳐진다. 「마리 로제 수수께끼」는 향수가게 점원인 ‘마리’가 살해된 후 강물에 유기된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 뒤팽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뉴욕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써진 거라고 하는데 실제 사건은 향수가게가 아니라 담뱃가게 점원라고 한다. 담뱃가게가 향수가게로 바뀐 거겠거니 생각하며 읽는데 검정고양이는 여기에도 포의 철저한 계산이 있었던 거라 말한다. 마리가 유기된 센 강이 향수가게 점원인 마리의 이미지와 결합해 강 자체가 거대한 향수로 변모하는 식이다.+0+
예상했던 대로 검정고양이는 걸음을 멈추고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희열에 찬 표정으로 눈을 번득인다. 미학자 검정고양이에게 미적 탐구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_ 본문에서
이런 논리의 전개는 다른 단편들에서도 무리 없이 이어지는데, 새삼 포의 천재성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도 이 작품의 작가인 모리 아키마로에게 눈이 간다. 백 년이 넘은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이렇게 멋진 또다른 작품을 탄생시키다니!
단지 작품성만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작품을 생각한 그의 대담함과 꾸준한 노력이 정말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작가 프로필을 보니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다! 내 생각이지만 작가도 이 책 속 ‘검정고양이’와 이미지가 똑같을 것 같다. ㅋㅋㅋㅋ
표지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펼쳐보니!! 우왕 굳~!
책도 재밌게 읽었는데 표지로 또 하나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이런 서프라이즈 선물 좋다 ^0^
가능하면 진상은 검정고양이에게 듣고 싶다. 어느새 그러기를 바라게 됐다. 그건 검정고양이가 진정한 미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학적 진상을 본다. 본인도 전에 말했지만, 아름다운 진상만이 진상이란 이름에 값한다는 사고방식이 그의 논리의 근저에 있다. 그렇기에 수수께끼의 입장에서도 그가 풀어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_ 본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