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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들을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어쩜, 저렇게 재밌고! 저렇게 경쾌할 수가,
그러면서도 이렇게 애잔하고 묵직할 수가!
여심을 쥐고 흔드는, 하지만 남자는 갖고 노는 다나베 할머니의 소설은 줄줄이 다 좋지만,
하지만,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소설…… 이건 정말 발견이다. ㅋㅋ
흘려보내기 쉬운, 혹은 겪고도 인식하기 어려운, 남녀관계의 소소한 감정들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공감되게 그려내는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어찌 보면) 비정상적인 관계들이 그려내는, 그래서 손을 대거나 말하기가 어려웠던, 그 쓸쓸한 감정들이 좋았고,
남자에 끌리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던 '노리코 시리즈'가 그랬고,
마치 하늘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듯, 우리 ‘젊은 것들’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 여자로서의 양심과 부끄러움을 간직하던 '우타코 씨'가 그랬다.
요새 계속 장편소설들을 읽고 그들의 페이스를 따라가며 조금씩 숨이 가빠오고 있는 찰나에 <서른 넘어 함박눈>은 단편의 경쾌함을(분량만으로도 참으로 경쾌하다ㅎㅎ) 되찾아준 무척 fresh한 소설이었다!
남녀관계의 미묘한 기류, 잔 속에서 넘칠 듯 넘칠 듯 넘치지 않고 찰랑거리는 긴장감!
차마 말은 못 하겠고 내 맘은 좀 알아줬음 좋겠고, 그런 사람에게 페이지 뙇뙇! 펴서 들이밀어주고 싶은 소설이다.
단편드라마(베스트 극장! 드라마 스페셜! 같은 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언니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밥 먹었냐는 문자 하나에 콩콩 가슴 설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유머러스하고, 경쾌해서 스르륵 읽히지만 결코 웃기만 하고 끝낼 얘기가 아니고,
한 번 보고 책장에 모셔둘 얘기가 아니다.
두고두고 꺼내보며 볼 때마다 웃고, 볼 때마다 뜨끔뜨끔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