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크 ㅣ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제리>와 연달아서 본 <정크>. 같은 작가, 같은 출판사에, 책 디자인이나 제본 방식도 마치 시리즈처럼 비슷하다. 제대로 된 직장도, 의지할 가족도, 꿈도 없는 20대. 그나마 <제리>의 ‘나’보다는 마음을 기대고 싶은 연인이나 친구가 있고, 가족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다.
이건 정말 중요하고 확실한 차이가 아닐까 싶다. <제리>의 ‘나’는 주위 시선 때문에 대학을 가긴 했지만 그 이후의 계획은 전무하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라며 강이나 제리에게 집착을 하기도 하지만 딱히 그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에 비해 <정크>의 성재는 오로지 민수형이 나를 봐주길 바란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긴 했지만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오로지 민수형만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리고 주위엔 <제리>의 여령언니나 미주보다는 훨씬 가깝게 사귀는 친구들도 있다. 게다가 성재에겐 꿈도 있고, 막연하지만 계획도 있다.
집도 없이 외로운 강아지 마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우리의 주인공 ‘나’는, 이제 비로소 하나의 실체로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성재. 거기다가 게이라는, 한국사회에서는 엄청난 핸디캡이 따라붙었다. 가족이, 연인이, 꿈이 있다고 해도 녹녹지 않은 세상에서 성재와 그의 친구들은 술과 담배, 마약에 의지한다.
토익이나 스펙에 열을 올리느라 자기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턱없이 부족하거나, 하더라도 획일 된 쪽으로만 향하는 현재의 20대들. ‘뭘 해야지’만 있고 ‘왜’ 해야 하는지 물음은 없다. 물음이 부족하니 생각이 부족하고, 생각이 부족하니 성찰은 필요 없다. 그저 좋은 데 취직, 돈과 명예. 다들 부러워하는 내 삶과 내 숨통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여유. 조금 도식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내가 본 2013년의 20대의 모습이 그랬고, 나 또한 이렇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등단한 젊은 작가도 이런 20대의 불안과 양극화를 누구보다 아프게 느꼈겠지.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들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그린 게 아닐까.
하지만 이번에도 아쉬운 점은 많았다. 행동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는 저자의 특징은 알고 있었으나, 이번엔 너무너무 장황했다. 행동과 속마음부터 마지막에 민수형에게 매달리는 장면까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
강조하고 싶었던 바는 이해가 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하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고 늘어지게 된다. 많이 지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