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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평점 :
내 이름은 Q_ P_. 산 세월은 삼십일 년하고도 삼 개월. 키 178센티미터, 몸무게 67킬로그램. 갈색 눈, 갈색 머리. 보통 체구. 팔과 등에 주근깨 약간. 양쪽 눈 모두 난시여서 운전 중에는 안경 필요. 외모 특징, 없음.
저명한 교수인 아버지와 인자하고 부유한 할머니, 성공한 누나를 둔 나.
나 역시도 대학의 시간제 등록생이자 부유한 백인 집안의 주택 관리인이다.
나는 완전 평범한 사람이다. 좀비를 만들 계획만 빼면.
내 마음대로 조종할 좀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오 년 전이었다. … 좀비로 안전한 대상은 타지 사람이다. 히치하이커, 부랑자, 쓰레기 같은 부류. (비쩍 마르거나 마약 중독자나 에이즈 환자만 아니라면.) 또는 시내에서 얼쩡대는 집도 절도 없는 흑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인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인간.
나는 좀비를 만들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을 천천히 살피며 다닌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서 전두엽을 절제하면 자아가 지워질 것이고, 그러면 그는 영원히 나를 따르고 사랑하고 긍정하는, 나만의 충실한 좀비라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의학서적을 탐독하고 얼음송곳과 수술대(수술대가 식탁인데, 식탁을 사면서 상인이 “의자는 안 필요하세요?” 하자 “의자가 왜 필요하죠?” 했다. 어흨, 무섭다 이 남자)를 마련한다. 그리고 직접 수술을 감행한다. 물론, 무수한 실패가 뒤따르고 그런 시체들은 바로바로 버린다.

쿠엔틴이 하려는 전두엽 절제술.
실제 1940~50년대 미국에서 자행되었던 뇌외과 시술의 하나로, 당시 이 수술을 받은 많은 환자들이 심각한 인격변이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었고, 이후 부작용과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가 완전히 금지된 바 있다고 한다.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 언제나 공손할 것이다. 웃지도 히죽거리지도 못마땅해서 콧등을 찌푸리지도 않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곰 인형처럼 폭 안길 것이다. 우리는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 11월의 바람소리와 음악대학의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종소리를 세면서 같은 순간에 나란히 잠들 것이다.
실제로 17명을 살해한, 밀워키의 식인귀 제프리 다머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픽션으로 꾸민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이 진짜 무서운 건 이거다.
아무 죄의식도, 불안함도, 심지어 겁도 없다.
그냥, 나는 좀비를 만들려고 했을 뿐이고 계속 실패할 뿐이다. (그게 뭐?)

가지고 다니는 얼음송곳
망할 놈의 얼음송곳이 손잡이 부분까지 이름 없는 사람의 눈을 뚫고 뇌로 들어갔고, 흑인 청년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엄청난 코피를 줄줄 쏟으면서 죽었다. 또다시 일을 망치고 좀비는 만들지 못했다.
허읔!! 이시퀴!!! 진짜 완전 또라이!!!
이런 싸이코 패스의 무자비한 행동들도 너무 무서웠지만, 내가 소름끼쳤던 부분은 살인자 쿠엔틴이 아무 감정 없이 가족들을 대할 때였다. 아무데나 똥을 싸는 두 살짜리 아이처럼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전화해서 밥은 먹었니, 집에는 언제 오니, 크리스마스 때 집에 와서 같이 저녁 먹자, 말하는 엄마. 그럴 때마다 쿠엔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좀비』를 보는 내내 <케빈에 대하여>가 떠올랐다. 케빈이 엄마를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는 것도 엄마에 대한 감정표현이라 생각했고, 마지막에 그런 무서운 일을 저지르는 것도 엄마에게 관심받기 위해, 아니면 그런 분노의 표출 또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쿠엔틴 역시 아무 감정도 진심도 없이 그를 대하는 허울만 있는 가족의 절대적 영향 아래 그런 감정 없는 살인자가 된거겠지?
사이코패스라…… 쿠엔틴이 사이코패스라면 가족에 의해 만들어진 후천적 정체성일테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쿠엔틴보다 그 가족이, 그런 영향력을 주고받는 인간의 정신이 더 무섭다.
으…… 좀비…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