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구보 미스미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잔잔한 바다와 고래. 따뜻한 색감의 책이다. 이 책의 온도와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의 저자 구보 미스미의 새로운 소설이 나왔다.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전작에서 강렬하고 수위 높은 성 묘사로 한번, 그녀가 그려낸 인생의 처연함과 애잔함에 또한번 나를 놀라게 했던 작가 구보 미스미. 그 쓸쓸함의 여파가 너무 커서 한동안 그 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런 작가의 책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은, 비슷한 듯 다른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그 아픔들이 한데 뭉쳐 더 큰 고독과 위로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주는 치유의 여파가 더 크고 직접적이라고 해야 하나?

 

책의 후반부에 이들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보고 이해하는 부분도 좋았지만, 나는 왠지 앞부분에, 인물들의 상처받은 모습들이 더 좋더라. 특히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자신감도 없던 유토가 미카를 만남으로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부분.

 

고향에서 단란하지 못했던 가정의 기억은 아직 어린 유토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밀리 듯 도망치 듯 도쿄로 오긴 했지만, 혼자 출발하는 도쿄의 첫 생활이 활기찰 리 없다. 그런 유토에게 미카는, 낯선 ‘도쿄의 여기저기에 점을 찍듯 유토의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말을 걸어주고 유토의 긴 팔다리를 알아봐준 사람. 정면으로 부딪히는 법을 알려준 사람. 그런 미카와 다니며 유토는 ‘미카가 옆에 있는 유토’로 만들어졌고, ‘미카가 옆에 없는 유토’는 유토가 아니었기에, 유토는 미카를 잃음과 동시에 자신도 잃어버렸다.

 

 

“정말 많이 괴로웠겠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응, 나는 괴로웠던 거구나. 괴롭다는 감정조차 봉쇄하고 있었던 자신이 불쌍해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내가 ‘나’로 온전하게 살 수 없어 얼마나 불행하고 외롭던가. ‘나’를 ‘나’라고 말하지 못해서, ‘내’가 ‘나’를 알아봐주지 못해서 얼마나 주춤하고, 아프고, 고독했던가. 최소한 나는 그랬다. 내가 나를 바로 세울 자신이 없어, 나를 알아봐준 소중한 이에게 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내가 사는 이유를 떠넘겼다. 상대는 당연히,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유토를 보니 무한공감이 가는 건 당연할 수밖에.

 

 

“절대로 죽지 마. 살아 있기만 하라고.”

그렇구나 하고 유토는 생각한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연탄을 피워 죽으려 했던 노노카에게도, 팔목을 그은 마사코에게도, 약을 먹고 간단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했던 자신에게도 그저 ‘죽지 마’ 그러면 그만이었겠구나. 그저 그 말이면 됐던 거였구나.

 

 

구보 미스미는 “절망을 탁월하게 그리는” 작가로 정평이 났다던데, 이 얼마나 탁월한 수식인가.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절망을 우주처럼 붙잡고 매일매일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인물을 다루는 ‘소설가’에게 얼마나 큰 찬사인가. 정말… 아프고, 두렵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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