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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없애거나 행복한 기억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소설은 나노로봇에 의한 기억 개조 기술에 관한 이야기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아마가이 치히로는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친한 친구없이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낸 인물로 어린 시절 기억을 지우는 '레테'를 구입하기로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한 지 4개월 쯤 지나 자금이 모여 클리닉으로 달려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레테(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해 주는 나노로봇)'를 구입해 복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기억상실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보니 자신에게 도착한 것은 '레테'가 아닌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인 '그린그린'이었다.
치히로는 '그린그린'으로 인해 새로운 어린시절의 기억이 생겼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꿉친구. 그녀의 얼굴을 본 적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 없지만 진짜 기억이라고 의심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녀가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존재할 리 없는 소꿉친구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그에게 요리도 해 주고 음악도 함께 들으며 그와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여름밤의 꿈처럼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누구일까? 치히로는 그녀가 가공의 인물인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등학교 친구를 찾아가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왜 치히로의 그린그린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것처럼 연기를 하며 다가온 것일까? 그녀의 정체는 치히로가 그녀를 추적하던 중 한 통의 편지로 밝혀지게 된다.
그녀는 '레테'를 주문한 치히로에게 '그린그린'을 일부러 보낸 의억가공사(의뢰인의 이력서를 토대로 가공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인력)였다. 그녀는 서서히 기억을 잃게 되는 병을 가진 시한부 환자였는데 그녀도 치히로처럼 고독한 어린시절을 보내 죽기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이런 일을 꾸몄던 것이었다.
이 소설은 전반부는 치히로의 시점으로, 후반부는 도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둘의 운명같은 짧은 사랑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난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렸던 둘의 사랑은 활짝 펴보지 못하고 끝났지만 치히로는 도카로 인해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고 도카 역시 운명의 상대라고 예감한 치히로에게 사랑을 받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었다.
이 소설처럼 기억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만들어낸 행복한 기억은 진짜 내 기억이 아니니 사는 건 좀 고민이 될 것 같은데 특정 시기의 기억을 잊게 해주는 '레테'는 한번쯤 사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긴 했다.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_
한 여름밤의 꿈 같았던 치히로와 도카의 사랑이야기는 비록 짧았지만 그 이야기는 어린 시절 기억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기에 더 애잔하게 느껴진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