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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대산세계문학총서 1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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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전률한다!
각운이 모두 맞추어진 원문을 보니 불어에 까막눈인 처지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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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퓨처 - 기후 변화, 생명공학, 인공지능, 우주 연구는 인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
마틴 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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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104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우려섞인 예언이 나온다.  


2003 년에 나이러한 위험에 대해 걱정했고 2020 년까지 100 만 명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바이오 오류 또는 바이오 테러의 가능성을 50 %평가했다. … 그러나 최근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스티븐 핑커가 200 달러를 들여 나와 내기를 걸었다. 이것은 내가 잃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기이지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저자가 낙관적인 선택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그럼 2003년 책인 Our Final Century에서는 또 어떤 불길한 예언을 하는가?  


21세기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정도가 아니라 - 인간 자체를 바꾸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은 초 지능을 가진 기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단 한 세기 후에 조차 지구에서 지능을 가진 가장 우세한 종이 어떤 형태일지 알고 있지 못하다. … 우리의 운명은 이번 세기 동안 우리가 할 우리의 선택들에 달려있다.  


왕립 천문학자라고 소개된 이 영국 여왕의 점성가는 수정구슬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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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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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접하는 지식 중 체험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많은 경우 지식의 확실성은 결국 그 지식의 근원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로 귀착되는 듯하다.  이것은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접할 때 문제가 드러난다.  특히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관련된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으로 원자력을 내세우는 경우, 정부나 원자력산업계와 이해관계가 있는 과학기술자들의 말을 받아드릴 것인가 아니면 그에 반대되는 말을 믿을 것인가?  두 당사자들의 말이 상반될 경우 결국 우리각자의 판단이 중요해 진다.  특히,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가진 권력이 권력의 힘으로 진실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그러한데.  여기에 그 한 예가 있다.

평생을 반핵 운동가, 시민 과학자로 보낸 저자가 쓴 이 책은 내가 원자력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의 약력이 말해 주듯이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저자의 주장이 독자인 나의 판단에 큰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원자력의 실상을 깨닫고 나 스스로 판단을 내리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관심 있는 다른 독자들께도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1. 원자력은 그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물을 데워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에너지로의 응용가능성이 거의 없고 에너지 효율도 아주 낮다.  게다가 원자로는 전력 수요와는 상관없이, 안전상의 문제로, 항상 일정한 율로 가동해야 한다.  즉 출력을 조절할 수 없어 에너지의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결국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은 아주 융통성이 없는 방법이다.  이는 책을 읽기 전에는 모르던 사실로 저자는 원자력기술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통해 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2. 원자력 발전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서 경제성도 높지 않다.  비용 산정은 어디까지 포함할 지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원자로 개발비용은?  설치지역 주민 보상비는?  방사능 폐기물 처리비용은?  원전사고에 따른 보상비용은?  저자의 추산에 따르면 이러한 당연히 필요한 비용을 모두 제외하고도 원자력은 화력발전에 비해서도 싸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위의 비용까지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  비용추산이야 목적에 따라 불확실한 측면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눈을 끄는 것은 미국을 포함한 구미의 최근 원전 발주 실태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80년 이후 원전을 한 건도 발주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79년 심각한 원전사고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결국 이해타산이 맞지 않다는 것의 반영으로 보인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니 오일 쇼크가 일어난 73년 많은 원전계획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새로운 발주는 없었다.)  특히 원전 사업이 성공적으로 민영화 된 경우도 유래가 없다는 점은 국가기관의 발표와는 달리 사실은 경제적 이윤이 없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의 원전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국민의 세금인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값싼 에너지 운운하는 것은 실상을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 된다.  어쨌든 원전의 경제성에 대한 실상은 현재 담당 국가기관의 주장과 현저하게 다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이 책을 읽은 후 독자들의 판단력을 스스로 시험해 보시기를 권한다. 

3. 최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온실기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청정 에너지원으로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책의 자료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원에서 원자력을 포함한 발전소가 기여하는 바는 7%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화력 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전부 대체한다고 하여도 (이것은 원자력발전이 융통성이 없어서 불가능하다) 지구온난화 완화에는 별 기여가 없다는 것이다.  즉, 원자력발전은 지구온난화 완화와는 무관하다.  (정부가 이러한 기본적인 점을 모를 리 없다고 보면 이런 억지 주장을 동원해서 까지 원자력을 추진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둘째, 화력 발전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을 배출한다.  이산화탄소만 배출하지 않으면 방사능은 배출해도 청정한가?  이건 궤변 아닌가? 

4. 방사능이 당장 대기로 배출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방사능은 수십 만년간 지속되며 우리든 우리 후손이든 언젠가는 그 처리를 감당하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50년 원전 역사에서 폐기물을 바다에다 함부로 내다버린 경우는 많지만 지층으로 최종 처분이 진행된 나라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어떤 나라도 원전폐기물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결정을 내린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정부의 일방적인 원자력발전소 추진에 우리의 의견과 선택이 반영되어있는가?  다른 측면에서, 나중에 이러한 일방적 추진이 큰 위험을 초래한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이며, 우리는 그 결과에 책임이 없는가? 

5.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 물질을 남기는 것 이외에도 거대사고의 가능성이 항상 따라다니는 등 유례없이 엄청난 위험성을 가진 기술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만도 사망사고를 포함한 많은 사고가 있어왔는데 많은 경우 외부조사가 아닌 내부고발자에 의해 밝혀졌음을 강조한다.  이점에서 우리의 경우는 상황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국가에서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왜 원자력을 추구할까?  그 답은, 책의 여러 통계 자료를 보면,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달리,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경제성이나 지구온난화 운운은 궤변에 가깝다.

6. 그 답은 원자력발전은 핵무기 개발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하여 이미 투자해 놓은 원자력기술을 이제 와서 아깝게 사장해 버릴 수 없다는 심정도 있을 듯한데, 그 결과가 더 큰 비용과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멈추는 것이 지혜로운 판단이 아닐까?  2000년에 발행된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일본이 원자력발전으로 30톤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다.  플루토늄 7-8kg이면 핵무기 하나를 만들 수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4000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원자력발전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은 그 순도가 낮아 핵무기용으로 쓸 수 없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도 충분히 핵무기를 만들 수 있으며 오히려 만들기 더 쉬운 측면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상식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원자력 계획은 그 자체가 군사적 핵무기 개발을 의미할 정도로 기술적으로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는 역사적 사실임을 밝힌다.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의 원전 경쟁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자신들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지 않은 어리석은 결정이다.  

7. 원자력이 핵폭탄으로 그 탄생을 알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국가권력의 정치적 비호아래 평화적 핵 이용이라는 탈을 쓴 원자력발전으로 이어진 것은 인류에게는 더 큰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판단이 든다.  지금은 어떻게 순조롭게 이 가공할 기술이 이미 벌여 놓은 어려움을 수습하느냐의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즉, 지금은 더 많은 핵발전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기존의 핵발전소들을 더 큰 피해 없이 폐쇄하고 이미 만들어진 방사능을 처리하느냐의 문제가 21세기에 인류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8. 원자력은 처음에는 “값싸고, 청정하고, 안전하고, 무한한 양과 적용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선전되고 그렇게 기대된 에너지원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중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천덕꾸러기로 밝혀지게 되고 인류와 우리의 후손들까지 진퇴양난의 위험한 지경에 빠뜨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잠재적 재앙에 대한 이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9. 대규모의 원자력발전은 인류가 인위적으로 꺼내기 전에는 자연적으로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랜 진화의 산물인 우리를 포함한 지구생명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었던 실험적인 상황을 맞은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킨다.)  그 결과 처음에 기대하던 희망이 극도로 위험한 현실과 미래를 만들어 놓은 불행한 예를 원자력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의도에서 실상을 왜곡하고 대중을 기만하며 출발한 것에서 잉태된 측면이 있다.  물론 이 실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불행히도 우리정부는 역사와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런 무모한 실험에 찬성하지는 않았더라도 피해는 모두가 함께 겪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각자가 실상을 알고 있는 것이 문제를 더 확대하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0. 원자력의 역사는 폭력과 거짓, 기만의 역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나마 제한된 우라늄의 양을 고려한다면 한 두 세대 정도가 쓸 에너지를 위해서 수십 만년간 지구생명과 인류의 후손을 괴롭힐 수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폐기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하루 밤의 쾌락에 평생의 고통을 얻게 된 불행한 인간이라는 우화에나 나올법한 비유가 떠오른다.  인류가 이렇게 무모한가?

11. 여기에 교훈이 있다.  현재 인류가 꺼내고자 하는 더 큰 실험인 핵융합은 더 크고 위험한 실험이 될 것이다.  지금 바로 우리가 50-60년대에 원자력에 대해 그렇게 기대 했듯이 미래의 핵융합에 대해서 “값싸고, 청정하고, 안전하고, 무한한 양과 적용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지 않은가?  유전공학은 어떠한가?  옥수수의 유전자에 물고기나 사람의 유전자를 섞는 것이 바로 자연에는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것 아닌가?  어느 정도의 무모함이 지금의 인류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기술이 이미 제공하고 있고 앞으로 제공하게 될 수단들은 일부 인간들의 작은 무모함이 현생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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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섬 - 프로그램화된 사회에서 인간 이성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요제프 바이첸바움.군나 벤트 지음, 모명숙 옮김 / 양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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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초래한 인간의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이 생겨 관련된 독서를 하던중, 알라딘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석과 같은 책이다. "이성의 섬"은 컴퓨터 공학자이며 비판자인 바이첸바움과의 대담을 기록한 책으로 인간과 기계, 그리고 우리의 역할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컴퓨터 공학자는 넘쳐나지만 그에 대한 비판자는 드믄 현실이 바로 불안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면 바이첸바움은 그 두 가지를 지혜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기계의 편리함에 취해 사태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더욱 기계의존적으로 되어가는 현생인류에게 현실적인 경고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컴퓨터의 시종이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우리는 서서히 기계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진화와 역사의 산물인 인간을 기계로 대체할 수 없고 그러한 대체를 허용하여서도 안된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제시하는 통찰 중 하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연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과학은 세계종교가 되었고, 대부분의 신도들은 마치 도그마처럼 단순히 맹목적으로 과학을 믿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성찰과 전체를 조망하는 이성" 그리고 "책임있게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 즉 "이성의 섬"이 되려는 노력이 아닐까.

번역자 모명숙님께서 독일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영어로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책을 우리글로 읽을 수 있게 해준 출판사와 번역자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원문과 비교할 능력은 없지만 내용이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이해되는 것으로 보건데 번역이 매우 잘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성의 섬"은 인간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하고 가능한 대안을 찾고 있는 독자들께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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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타고라스 범우문고 78
플라톤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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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이것이 그 유명하다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인가?

내가 철학에대해 전혀 소양이 없어서 일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의 태도에서 매우 당돌하고, 비아냥거리며, 오만한 기색을 느낀다.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당대에 유명했다는 프로타고라스와 토론이 아니라, 대결하여 대중앞에서 콧대를 꺽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의 토론법을 관철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부추기고, 자신의 방식이 아니면  바빠서 토론을 중단하겠다는 식의 으름짱을 놓는 따위의 속이 보이는 저열한 방법까지 동원한다. 그에 비해 그러한 내심을 모르는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의 계획된 함정식 토론법에 말려든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사용하는 미리 계산된 듯한 단답형 질문들에 일일이 대응하다보면 모순된 상황에 걸려드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이러한 문답법이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고 교육하기 위한 방편으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자신이 배우겠다 하면서 프로타고라스를 함정으로 유도하는 방식으로 쓰니 치졸하고 교활한 전술적인 수법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물고 늘어지기식의 집요한 공세는 (이것이 소위 문답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에도 짜증이 날 판이지만 프로타고라스는 용케도 참아주는데, 결국 말려든다. 

마지막 부분의 토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승리한 듯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소크라테스보다 연장자인 프로타고라스의 너그러움이 돋보인다. 플라톤이 썼지만 전부 소크라테스가 자랑삼아 전하는 말로 구성되어 있는 책을 읽고도 소크라테스에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프로타고라스를 소피스트라고 비하하였는데 대화의 전개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입만 살아서 한술 더 뜨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교묘하게 격하시킨 것인가. 

결국 덕을 교육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나온 결론마저도 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내가 철학에 무외한이기 때문일 수 있겠다.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인지 짧은 책이기에 다시 한번 읽어볼 예정이다.

내용이 제대로 번역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글은 매끄럽게  읽힌다.

이책에서 아쉬운점은 무엇을 원전으로해서 번역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어 원전인가, 영어인가, 일어인가. 이점은 밝혀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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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운 2008-09-1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단 문외한이나 고치시길ㄱㄱ

ㄴㅁㅇㅈㅂㄷ 2013-01-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은이에 플라톤이라고 돼 있잖아요;; 맥락도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피곤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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