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은 제정 분리 사회로 정치적인 일을 맡아하는 지도자 외에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있어 부족장 못지않은 권위와 명예를 누렸다.제사를 드리는 신성한 장소를 '소도' 라고 했는데 이곳에 죄인이 도망쳐 오면 함부로 잡아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남해라는 명칭이 사용 된 것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부터 지금(2021년)까지 1244년이 되었다.현대에는 1읍 9면 으로 남해읍,고현면,설천면, 이동면,삼동면, 남면, 서면, 상주면, 미조면, 창선면이다.
철기시대 '삼한'의 하나인 변한의 한 국가였던 남해엔 청동기 시대 유물도 남아있다. 기원전 3000년~4000년 된 고인돌이다.이동면의 남해다정리지석묘(경상남도 기념물 제 62호)를 비롯해 남해읍 평현리, 심천리, 남면 상가리, 평상리,당항리, 창선면 당항리, 고현면 대곡리에 고인돌이 남아 있다.
석기시대의 그릇들도 발굴 되었다.민무늬 토기 석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신석기 시대의 토기와 석기라고 추정하면 기원전 4000년~3000년 전이다. 그러하니 남해에는 약 5000년~6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무한한 세계, 장대한 강줄기 처럼 이어져 온 역사 그 속에 내가 살고 있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날마다 보는 친근한 이웃의 모습에 또 다른 형상이 비쳐 보이기도 했다. 누에를 키워 실을 뽑아 물레질을 해 비단옷을 지어 입은 옛 철기시대 사람이 보이기도 했고 농경사회를 만들기 그 이전 좀 더 자유로웠던 구석기 시대 유목민이 보이기도 했다. 쌀알만 한 눈앞의 현실 한 알갱이 안에 유구한 역사의 너른 들판이 담겨 있었다. 남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피와 혼에는, 선인들의 풍속과 지혜가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