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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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여행서는 모든 이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도구였나 보다. 현실의 이유에 묶여서 여행하지 못하는 이들이 책과 사진을 보며 위안을 얻듯, 여행 작가인 이즈미 로안 역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온천이나 신기한 풍경들을 찾아내어 책에 담는다. 여행을 좋아하는 로안에게는 돈도 벌고 새로운 곳도 탐험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일터. 하지만, 여행 작가이면서도 심각한 길치인 로안은 툭하면 길을 잃어버린다.

<이즈미 로안이 자신만만하게 앞장서기에 설마 길을 잃겠냐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산속에서 똑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아니, 맴돌았다는 표현이 과연 맞는 걸까? 길은 곧은 외길이다. 하지만 나무에 표시를 새기고 조금 걷다 보면 똑같은 표시가 새겨진 나무가 앞에 보였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진정해. 늘 있는 일이야." 미미히코가 말했다>

 

 

설정부터 흥미로웠다. 길을 잃는 여행 작가라니! 하지만 책에 실린 아홉 가지 기담을 따라가는 동안 나 역시 이즈미 로안과 함께 길을 잃었고, 같이 헤맸고, 신비로운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가끔 운전을 하다보면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분명 이쪽 길로 가면 이런저런 도로가 나와야 하는데 눈에 익은 곳이 아닌 엉뚱한 곳이 나오면 겁에 질린다. 하지만 정해진 약속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골목길, 가게, 담벼락 등을 훑고 있노라면 꼭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기담집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정해진 길만 쫓아가다 보면 새로운 것을 놓친다. 새로운 것을 놓치면 신비로운 경험 역시 놓치게 된다. 이즈미 로안의 짐꾼인 미미히코는 죽을 뻔한 경험을 하면서도 몇 번씩 로안과 여행을 떠난다. 물론, 노름빚 영향도 있겠으나, 나는 미미히코가 어쩌면 새로운 경험과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를 쫓아 길을 나서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리에서 떨어져 죽을 뻔 한다든가 이미 죽은 사람들과 온천을 하다 그들을 따라갈 뻔 한다든가 등의  무서운 경험은 직접 체험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뻔 한 일상에 질려있는 사람에게 이 기담집을 추천하고 싶다. 이즈미 로안의 뒤통수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분명 새롭고 신비로운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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