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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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영화를 보면, 그날 하루가 어땠는지 고스란히 기억난다. 보고 싶어서 본 영화는 아니었다. 친구가 예매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며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무척 피곤했으므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졸라대는 친구를 외면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졸래졸래 따라갔었다. 영화 보는 내내 빌리 에게 푹 빠져있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마침내 정신 차렸을 때, 친구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가슴 설레는 영화를 못만났을테니까.

 

지금도 우울하거나 눈물날것 같은 날에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본다. 개구장이같은 얼굴로 침대를 깡총깡총뛰는 빌리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어느새 빌리와 박자 맞춰 열심히 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꼬마는 내게 그런 의미다.

 

하도 열심히 본 탓인지 영화 세세한 장면까지 그리고 있는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영화장면과 대사에서 표현해주지 못한 주인공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할까. 빌리가 저 장면에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발레를 배우면서 어떤 동작을 제일 힘들어했는지, 형과 아버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가는 즐거움은 책읽기의 또 다른 보너스였다.

 

아무 희망도 없는 시대, 그리고 죽어가는 탄광 산업, 몇 해 전 죽은 어머니로 인해 어두운 집안 분위기는 희망조차 꿈꿀 수 없게 했다. 그나마 빌리 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어머니가 유언처럼 써둔 편지 한 장일뿐이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형과 아버지를 보며 가슴이 짓눌린 듯 답답해하는 빌리는 '발레'라는 존재를 만난다. 계집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코웃음쳐보지만 그러기엔 발레 동작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박혀버린다. 그리고 빌리는 가슴 속에 발레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나는 빌리를 떠올릴 때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 역시 함께 떠오른다. 제제 역시 어두운 집안 환경으로 인해 희망이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사랑하는 오렌지 나무인 밍기뉴와 뽀르뚜가 아저씨의 진정한 사랑으로 인해 제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빌리의 발레와 제제의 뽀르뚜가 아저씨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 역시 험한 세상 속 마지막 남은 희망을 찾아 여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기에 빌리의 아름다운 도약에서 가슴 벅찬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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