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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기 까다로운 타입이다.(라고 혼자 생각하곤 한다.) 웬만큼 친해지지 않고서야 속내를 잘 내보이지 않을 뿐더러,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온갖 쌍욕을 날리며 (혼자) 뒤통수 때리는 타입이니 날 아는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내 스스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김연수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아 어쩌면 이 분도 나와 비슷한 부류일지 몰라' 라고 생각한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선생님 역시 내성적인 부류이기 때문일까.
김연수 선생님을 좋아해서 '전작주위'를 할 만큼 책에 빠져보고 강연회에도 참가해봤지만 정작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들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나 같은 독자들에게 아주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왜 달리기에 빠졌는데, 왜 작가가 됐는데, 평소 어떤 생각으로 사계절은 보내는지 사소한 것까지 궁금한 이들에게 모범답안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달리기는 몸을 만드는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만드는 운동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별다른 목표 없이 두 달 동안 설렁설렁 뛰고 나니 마음은 내가 한 일들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일을 이기기 위해, 혹은 나를 위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냥 '달리기'를 하느냐, 아니면 '후달리기'를 하느냐고 책은 묻고 있다. 내 의지로 삶을 사는 건 달리기, 그리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건 후달리기다.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던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지만, 마지막 결승골을 들어오는 마라토너가 누구일지는 예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리고 나 역시 달리고 싶지 후달리고 싶진 않다.
<어느 날 갑자기 그 개별적인 존재의 슬픔이란 그 존재 역시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나는 모든 화가와 작가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나에 대해서 그리고 썼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거나 읽은 대가들의 작품은 예외 없이 나를, 나 자신의 삶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처럼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동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이 책을 일주일동안 품어가며 야금야금 맛있게 읽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야기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색에서 나올지 모르겠으나 꼭 내 삶을 다룬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몸은 책을 읽고 있지만 마음은 더 넓은 들판을 마음껏 뛰고 있었다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
<우리는 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바람을, 더 많은 서늘함을 요구해야만 한다. 잊을 수 없도록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지켜보고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맛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아침의 미명 속에서도 우리가 달리는 이유다. 그게 바로 때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심장이 뛰는 한, 우리는 살아있다. 사망선고는 심장이 멈췄다는 일자 그래프가 그려졌을 때만 선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소에는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없지만, 뛰는 순간에는 뛰고 있는 심장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팔딱팔딱 뛰고 있는 심장이 꼭 내게 '나 여기 있어. 그러니까 힘내'라고 속삭여주는것 같기 때문이다. 한 순간만이라도 바득바득 이겨보겠다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팔딱이는 심장과 함께 뛰어보면 어떨까. 그럼 지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몸과 마음으로 흡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