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구보 미스미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라고 늘 생각해왔다. 친구나 혹은 그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보석처럼 '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속에서 깨닫지 못할 뿐, 제 삼자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분명 찬란히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살아내고 있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속에도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왕따당해 아픈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이혼한 부모를 두었던 아픈 기억이 존재한다.

평범한 고등학생 이였던 타쿠미는 우연히 안즈를 만난 후 성(性)에 눈을 뜨게 된다. 비록 처음 알게 된 성이 남들이 보기에 자극적이고 변태적이라고 해도 그는 그녀에게 끌린다.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안즈는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타쿠미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타쿠미가 사랑한 안즈는 어렸을 때부터 뚱뚱하다고 왕따당하던 아이였다. 끔찍한 회사생활에서 구해준 남편과 결혼했으나 행복은 없었다. 그런 그녀가 겨우 사랑한 사람은 고등학생인 타쿠미였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결국 불임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타쿠미가 안즈를 잊지 못해 힘들어할 때 그의 여자 친구가 될 뻔 한 나나는 타쿠미를 잊지 못해 힘들어한다. 커다란 홍수 뒤에는 밝은 태양을 만날 수 있듯이 그녀 역시 희망을 놓지 않는다. 타쿠미의 절친 료타는 가난한 동네 출신이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겨우 먹고 사는 그에게 공부는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만난 형을 통해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고 어쩌면 자신도 이 쓰레기 같은 동네에서 떠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한 동네, 혹은 옆 동네에 살며 어쩌면 한 번쯤은 얼굴을 마주쳤을지 모르고 혹은, 인사를 나눴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소문에 현혹되어 그들에게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른다. 저 여자가 집에 고등학생을 끌어들였대. 타쿠미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어떤 여자랑 관계하고 있어.....무성한 소문에 가려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묻혀버린다.

내가 이 책에 강하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쩌면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책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사고 소식들처럼 길고 긴 그들의 이야기가 단 두 줄에 정리될 수 있겠지만, 풀어서 얘기하자면 그들의 내면에서는 책 10권과 맞먹는 깊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것일 테니까.

타쿠미의 어머니는 조산원을 운영한다. 그녀는 아들의 문제로 고심하면서도 새 생명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두 명의 산모의 출산을 정신없이 돕던 밤, 타쿠미가 없어진다. 그녀는 마무리를 조수에게 맡기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깊은 어둠속에서 울음을 터트리던 타쿠미는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트리던 아기의 울음과 닮아있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 섹스, 소문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삶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는 것은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외침이 아닐까. 그래서 타쿠미의 울음 속에서 난 희망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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