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여행을 계획할 때 무조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무의식중에 '우리나라에 볼 것이 뭐가 있겠어?' 라든지 혹은 '우리나라는 언제든 가 볼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작용하는 것 같다. 막상 좋다고 추천받아 떠난 여행에서도 제대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죽 둘러보고 오는 게 전부다. 몸만 피곤하고, 남는 게 전혀 없는 일회성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이중적 잣대를 가진 한국 사람이라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과 유산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더 먼 나라의 더 웅장한 유산을 보는 것에 욕심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경복궁을 눈앞에 두고 옆 나라 중국의 자금성이 더 크고 웅장하고 멋지다며 부러워했었다. 그런 내 생각을 콕 집어내기라도 했는지 저자는 책의 첫 시작을 경복궁에서 출발했다. "경복궁의 중요한 특징이자 자금성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위치설정에 있다..... 경복궁은 우리나라 건축의 중요한 특징인 주변 환경, 즉 자연과의 어울림이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경복궁에 갈 때 한 번이라도 주변과의 어울림을 생각했었는지 고민해봤다. 늘 가까이에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 번 휙, 둘러보고는 끝이었다. 월대 모서리 석견의 짓궃은 표정이라던 지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이라든지, 양의문 굴뚝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가까운 경복궁에 대해 이렇게 무지했으니 저 멀리 있는 유산들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람재에서 바라 본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전경이라든지, 품위 있는 황산마을 돌담길이라든지 낙화암에서 본 백마강의 풍경은 비록 사진으로만 접할 수 있었지만 꼭! 가보고 싶은 풍경 중 하나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 구석구석 잘 알고, 모두 꿰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더랬다. 그래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문화 유산을 놔두고 툭하면 해외로 나갈 생각만 했었다. 친숙하고 정감 가는 곳인 만큼 그 곳에 직접 찾아가 내 발로 거닐어 보고 싶어졌고, 직접 내 눈에 담고 싶어졌다. 아직 나는 문화유산답사기 1권부터 5권까지 접해보지 못했다. 이 역시, '내가 다 아는 내용일 텐데'라는 자만에서 비롯했었다. 시즌 2로 새롭게 돌아온 유산답사기 6권을 읽으며 좋은 책을 접하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을 친 건 나 하나만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제일 건성건성 넘겼던 경복궁부터 다시 시작해보련다. 꼭 비오는 날 제일 커다랗고 예쁜 우산을 들고 근정전 앞마당 박석 마당을 고즈넉하게 걸어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