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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평점 :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을 가다보니 자연스레 혼수 얘기가 일상소재가 되곤 한다. 혼수 비용으로 시댁에 얼마를 드렸더니 얼마가 돌아왔더라, 예단비에 비해서 혼수로 받은 내용이 별로더라...라는 미지근하고 시덥잖은 내용들이 태반이다. 헌데 언제부턴가 혼수안에 명품백이 들어있으면 혼수받은 친구를 존경을 눈길로 바라보곤 한다. 어머, 시댁이 좀 사나봐. 혹은 예단비를 그렇게 많이 드렸어? 라는 반응들...시댁 어른께 명품백을 받은 친구는 콧대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친구들은 좋은 선물을 받았다며 부럽게 바라본다. 명품이란 것이 이렇게 우리 생활안에 자리잡았다. 예비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명품으로 선물해야 주위에 기가 사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말이다.
샤넬 스타일
책의 저자는 샤넬을 '샤넬 장군'이라고 칭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기회가 되면 샤넬에 대한 전기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다. 온 몸을 고통스럽게 조르는 코르셋으로부터 여자들을 해방시켜준 샤넬은 그야발로 여성들의 대변인이자, 장군일 것이다. 치렁치렁하고 거추장스러운 옷감으로부터, 실용적이고 튼튼한 옷감으로 일하는 여성들을 대변한 샤넬은 온 몸으로 여성들의 해방을 선포했다. 샤넬 스타일이 창조되는 순간 여성들은 자신을 옥죄던 사슬에서 해방되어 한 걸음 더 진보할 수 있었다. 물론, 샤넬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디자인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움직임을 먼저 생각한 그녀였기에 우리는 코르셋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유롭게 운동하고, 일하고, 활동할 수 있었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섹스 앤 더 시티
섹스 앤 더 시티의 열렬한 팬인 한사람으로서 책에 언급된 캐리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가슴에 와닿던지. 섹스 앤 더 시티로 인해 뉴욕은 '뉴욕 스타일'로서 자리잡았고 온 세계 여성들은 캐리와 그 친구들의 일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고, 저녁에는 파티에 초대받아 예쁘게 꾸미고 화려하게 사는 일상들-비록 드라마 속 에피소드라고 할 지라도 분명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성들에게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뉴욕이란 도시에서 여자가 자리잡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명품에 대한 갈망은 드라마를 통해, 각 집의 브라운관을 통해, 여성들에게 흘러들어왔다.
명품, 혹은 사치재
하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현재 샤넬 스타일이라 불리는 옷은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샤넬이 창조한 것이였다. 하지만 현재는 단지 명품이라는 단어 아래 환상을 심어주고, 그것을 가지면 마냥 뽐낼 수 있다고 믿고 있는것이 대부분이다. 알고보면 뉴욕에 사는 캐리의 재산상태는 마이너스에 가깝지만 캐리는 수십만원하는 명품 구두를 사고 명품을 걸친다. 명품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은, 고통에 가깝다.
저자는 현명한 소비를 하라고 말한다. 내가 입고, 뿌리고, 먹는 것이 명품이라고 해서 나 자신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으쓱댈 수 있는 것은 명품을 걸쳐서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인성이 더 오래오래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사람의 인성을 만드는 것은 수백, 수천만원의 명품이 아니다. 내가 사려는 명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해서 모피제품이나 가죽제품은 현명하게 거절하는 현명한 소비 자세가 아닐런지.
이제 사람들은 스파 브랜드로 향하고 있다. 수백만원의 명품보다는 저렴한 스파 브랜드에서 자신과 맞는 소비를 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명품을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려 들지 말자.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 꼭 남에게 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명품'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말고 현명한 소비자인 내가 명품에 대해 현명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명품 공화국에서 지혜로운 소비를 하며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