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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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결말을 향해갈 즈음, 갑자기 한기가 들었다. 책 속 뮈리엘이 한 말 때문이였다.
"당신이 나한테 정말 몹쓸 짓 한 것 알아요? 내가 어제부터 계속 무슨 생각을 하게요? 어느 날 저녁 집에 들어왔는데, 내 자리를 다른 여자가 꿰차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일거다.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내 가족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내 친구들이 나에게 당신 누구냐고 오히려 반문한다면? 내 주민등록증에, 여권에 다른 여자의 사진이 붙어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온전히 내가 나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는 읽는 내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감추면서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내가 날 증명할 수 있는건 오직 머리속에 남아있는 기억들 뿐인데, 그것으로 충분하겠느냐고.

차 사고후 72시간동안 코마상태에 있었던 것이 기억에 영향을 미쳤던 것인지, 혹은 식물학자인 책 속 주인공의 직업 때문에 거기에 개입된 몬산토의 못된 계획 때문인지, 혹은 결혼생활에 싫증을 낸 부인 리즈의 오래된 계획 때문인지 그 어느 것하나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마틴 해리스는 증명해내야만 한다. 내가 진정한 마틴 해리스라는 것을.

결말을 향해 갈 수록, 하나둘씩 튀어오르듯 손에 잡히는 이상 현상들이 결말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영화 소재로 탐낼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맥빠질 정도로 급격하게 달려가는 결말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느꼈을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나를 증명해야하는 급박함 속에 빨려들어가다보면, 결말을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만나게 되고 결말의 충격이 그 속에 완화됨을 느낀다. 그리고 '뇌'라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게 재구성 될 수 있는지도 말이다. 결말은, 나로서는 완벽하다고 느낄 정도로 해피엔딩이였다.

책 속 주인공은 식물학자다. 식물들의 텔레파시를 믿으며 그들의 몸짓을 연구하는 학자다. 약해보이는 식물조차도 위급상황에서는 제 몸을 보호하려 한다. 식물학자 마틴 해리스는 그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그가 72시간의 코마에 빠진 그 시간동안 식물들의 그런 기제가 그에게 영향을 끼친건 아니였을지. 물 한방울 없는 사막에서 음악만으로 성장한 토마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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