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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촛불은 곧잘 '희생'과 연관 지어진다. 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의 속성 때문인지, 그 모습을 희생에 연관짓는 사람들이 참 많다. 불과 얼마 전, 제 몸을 희생해서 불을 밝히는 촛불을 들고 사람들은 광장에 모였다. 한 두명이 아니라 몇 천, 몇 만명의 사람들이 한 가지 마음으로 촛불을 밝혔다. 나를 보호해주는 국가라고 믿었지만 그 믿음에 철저히 배신당한 사람들이 촛불에 제 마음을 담아 광장에 모였다. 사람들은 흔들리는 불빛과 함께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멋대로 하지말고 제발 우리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여기, 이리저리 흔들리는 촛불을 좀 봐달라고.
지오는 좀 특별한 아이다. 할머니와 엄마와 엄마의 애인인 아줌마 조안과 함께 살고 있는 조그마한 소녀다. 레인보우 마을에서 그 어느것에 휘둘리지도 않고 자신의 조용한 세계에서 활기차게 살아온 소녀-그 아이가 바로 지오다. 열다섯살 생일이 되어 처음 혼자 떠난 여행, 그 여행지를 한국으로 정한 지오는 한국에 온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꿈 속에서 만났던 자신의 쌍둥이 오빠를 만나기 위한 것. 그래서 그녀는 한국에 왔다. 촛불이 여기저기 흔들리는 어지러운 시기에 말이다.
촛불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희영은 다이어리 앞에 '코코돌코나기펭'을 주문처럼 써놓고 살아간다. 어려운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멀리 타국으로 이민간 부모님을 둔 희영은 자신의 삶 역시 팍팍한 것을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삶에 얽매인 일을 하는 자신을 보며 주문처럼 코코돌코나기펭을 외운다. 언젠가는 꼭 자신의 출판사를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연우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아왔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촛불을 환하게 밝힌다. 수아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부유한 강남 아가씨지만 속은 아픈 추억들로 가득하다. 민기와 태연이와 술래는 아직 어려보이는 고등학생이지만, 입시 위주의 현실과 부모님의 벽에 갇혀서 촛불을 든 아이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광장에 아름답게 피어난 촛불이 숭고한 것은, 무작정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국민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인 국가였지만 국민들은 그런 국가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촛불 앞에 얼굴을 마주대고 이야기하길 원했을 뿐이다. 소통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 국민들을 차가운 물대포와 발길질 아래로 내몬것은 국가였다.
그런 일방적인 폭력앞에 지오는 방황한다. 자신이 여지까지 자라온 레인보우 마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이였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곧 그녀는 촛불의 흔들림을 이해한다. 거센 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 위태로운 촛불이지만 다시 굳세게 타오른다는 것을.
견디기 힘든 입시 지옥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소리내어 말 할 줄 아는 기특한 소년소녀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아줌마지만 유모차를 끌고 광장으로 나오는 그녀들, 일에 찌든 넥타이 부대지만 부조리한 현실앞에 촛불을 든 그들-그들 모두 캔들 플라워의 주인공은 아닐까. 촛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기 보다는 촛불을 든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겨울이 되면 죽은 듯 보이는 꽃이 따뜻한 새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듯이, 우리들 마음속의 촛불 역시 필요한 순간이 오면 다시 타오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