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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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두들, 그렇게 기를 쓰며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걸까?
심신이 지치고 만신창이가 됐을 때, 모두들 떠나려고 준비한다. 늘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상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낯선 풍경이 존재하는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떠나봤자, 며칠이 지나면 그곳 역시 지루한 일상이 될 텐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여자들이 여행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익숙했던 것들과 일상의 억눌림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려는 것이었다. 새로운 나를 만나고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마음을 빚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이 세계 곳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소중한 만남의 판타지를 꿈꾸면서 떠나고 또 떠나고.......'

정확히 지구본에서 서울의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내가 살고 있는 곳의 반대편이기에 모든 것이 이곳과는 반대로 흘러갈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일상에 찌든 우울함도 없고, 눈물도 없고, 걱정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서울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각각의 사연을 담고 아르헨티나로 모여든다. OJ여사의 게스트하우스라는 아주 특이한 장소로. 

번쩍이는 실내도, 화려한 응접실도 없는 소박한 곳이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스트하우스다. 손님 비위에 맞추기보다는 자기 맘대로 하는 OJ여사의 태도에 처음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흠칫 놀라지만, 곧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OJ여사의 게스트하우스는 그런 곳이다. 무엇을 찾으려고 온 사람이든, 혹은 버리려고 온 사람이든 마음 한 자리에 편안함을 채워넣을 수 있는 그런 곳.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날아온 OK김. 사랑하는 여자를 잊기 위해 여행 온 원포토. 불륜 작가라고 손가락질 받는게 싫어 도망치듯 떠나온 나작가. 사채업자와 아내로부터 도망쳐온 박벤처. 이들 모두는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려고 아르헨티나까지 날아왔다. 정확히 무엇을 버리려고 하는지도 모른채 그들은 방황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한 아르헨티나의 뜨거운 공기와, OJ여사의 진심어린 태도에 자신을 발견하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깨닫게 된다.

'힘들 때면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해. 그곳에 가면 새로운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말이야. 그런데 세상 가장 먼 곳으로 도망을 와도 달라지는 건 없어.'

가슴 속 상처가 가득한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버리려 하지만, 단지 도망치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는걸 알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점차 자신의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나며 깨닫게 된다. 상처를 버리고 희망을 채워넣으려면, 일단 내 가슴 속으로 먼저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실제 아르헨티나에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모델로 작가는 상상력을 펼쳐냈다. 단순한 여행서적 이전에, 자신으로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나 역시 많이 지쳐있는 요즘, 여행을 꿈꿨었다. 하지만 그 여행이, 여행이 아닌 단순한 도망은 아니였을지...진정한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임을 책을 읽으며 가슴 시리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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