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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하지만 그 시간들을 다 어디로 갔을까?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바라보며 하루 1440개의 아름다운 일 분들에 대해서 종현이 말하던 그 봄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버렸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글이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하필이면, 내 아름다운 시절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한탄하며 우울하던 그때에 이 책을 잡아버렸다니. 운도 없다.
한동안 울다가 겁이 덜컥 나버린 나는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짧은 글들만 가득한 이 책은 요즘 읽은 그 어느 책보다도 더 강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말에 일일이 대답하다가는 또다시 울보가 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다가, 잠이 오지 않는 새까만 새벽에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야, 책과 대면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책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부르는 여류작가도, 새까만 밤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도, 편안하고 안락한 서른살을 꿈꿨지만 초라한 현실을 마주한 그녀 모두 삶의 어느 한 부분에서 상처받았다. 우리는 상처받은 그들의 삶을 관찰하며 깨닫는 것이다. 비록 모두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상처받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노라고. 삶을 사랑하도록 노력하고 있노라고.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빠져들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게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덜컥 눈물부터 흘렸던건, 이런 느낌 때문이였을거다. 내가 꼭 앞을 보지 못한다는 느낌. 그래서 남들 역시 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는 느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괜시리 슬퍼지고 눈물부터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PD는 달로 떠난 코미디언을 따라가는 길에서 외친다. "지금, 보이세요?" 여행의 끝에서 보이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결국 상처가 아물면서 치유되는 느낌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정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