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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커리드웬 도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선가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지켜온 대통령은 반란군에 의해 제압당하고, 대통령의 시중을 들던 이발사, 요리사, 화가는 반란군에 의해 포로로 끌려온다. 대통령의 여름별장이었던 곳에 갇힌 세 사람. 그들은 각각의 사연과 생각을 지닌 채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세사람은 정권이 바뀌기 전 대통령의 권력에 굴복하던 이들이였다. 보잘것 없는 화가였던 남자는 아내와 결혼하면서 대통령의 모습을 매일매일 그리기 시작하면서 권력과 한발짝 가까워졌다. 요리사는 대통령의 주말마다 음식을 만들며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시작한다. 이발사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서 매일매일 대통령의 이발과 면도를 도맡는다. 그렇게 세 사람은 권력에 복종하며 자신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또다른 권력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밀한 욕망을 내재한 채 권력앞에 굴복한다. 화가는 아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통령의 부인과 하룻밤을 보낸다. 이발사는 형에 대한 죽음을 복수하고 싶으면서도 대통령의 면도를 매일매일 정성껏 해낸다. 면도칼로 그어버리고 싶으면서도 살고싶은 욕망에 쉽게 권력앞에 무릎꿇고 마는 것이다. 요리사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며 여자들과의 하룻밤 쾌락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면서 새로 만난 두목의 아내를 탐하며 자신의 욕망속에 빠져든다.
여자들 역시 욕망과 권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화가의 아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남편을 배신하고 대통령과의 하룻밤을 보낸다. 이발사의 딸은 여러 여자들과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자신 역시 애인과의 은밀한 생활에 빠져든다. 두목의 아내는 정권을 잡은 두목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옛 약혼자의 동생인 이발사에게 다시 기댄다.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그토록 권력에 기대는가.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 아닐까. 권력의 다른 모습이 욕망인 것처럼 권력과 욕망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이 생기면 또다른 욕망이 생기듯이 권력과 욕망은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이 되어 나를 덮쳐올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는, 후회란 좀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분명, 이 책의 결말을 씁쓸하다. 독한 술을 마신 듯 씁쓸함과 지독함이 입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의 마지막 문장을 곱씹는 것은, 내면의 욕망이 은밀한만큼 권력 앞에 쉽게 무릎꿇는 인간의 본성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모습이, 결코 책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씁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권력과 욕망의 수레바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