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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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피엘바카지만, 겨울에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매서운 바람과 하얀 눈만이 피엘바카와 함께하는 어느 겨울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숨쉬는 것만으로도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올만큼 추운 집안에서 알렉스가 욕조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손목을 그은 그녀는 피웅덩이에 자리잡고 있었고, 차가워서 얼어붙은 그녀의 모습은 새빨간 피와 대비되어 아름답워 보이기까지 했다.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빠르게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져나간다. 죽은 그녀는 아름다운 알렉스였고, 그녀를 발견한건 우연히도 어렸을때 친하게 지냈던 에리카였다. 친하게 지냈던 그들이였지만 알렉스는 차갑에 사라져버렸고, 친구의 부재로 고통받은건 에리카였다. 그런 그녀가 한 명은 시체로, 한 명은 그녀를 발견한 목격자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에리카는 알렉스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오랫동안 그녀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어른이되어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본의 아니게 알렉스의 사건에 깊이 발을 담그게 되고 점차점차 알렉스의 모습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어렸을때 친하게 지냈던 동무의 모습에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점차 맞춰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음공주같던 알렉스는 그 누구에도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결혼한 남편에게까지도. 가까이 다가가면 갈 수록 차갑게 자신의 내면을 감췄던 얼음공주 알렉스-그녀에게 진정한 친구는, 어쩌면 에리카가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에리카는 알렉스의 삶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용의자로 안데르스가 잡히지만 그의 알리바이는 곧 확인되고 수사는 미궁속에 빠져든다. 하지만 곧 안데르스까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모습으로 발견되고, 연이어 이어지는 살인사건에 피엘바카는 공포속에 빠져든다. 도대체, 살인범은 누구일까?

차갑고 한적한 피엘바카에는 말로 할 수 없는 끔찍한 과거가 존재했다. 그 과거가 어린 아이들을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얼음속에 가둬버렸던 것이다. 얼음공주는 자신의 얼음을 녹여버리고자 결심했지만, 곧 그 결심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범 대신, 차가운 과거속에서 죽은듯이 살아왔던 살인범이 수면위로 떠올랐을때, 나는 조그마한 탄식을 내질렀다. 살인범 역시, 얼음공주와 함께 오랜세월 추위에 얼어있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인 에리카와 형사인 파트리크의 조합은 꽤 신선했다. 날카로운 직관을 가진 파크리크와 상상력이 풍부한 에리카는 서로의 정보를 조합하며 사건을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상처받은 그들의 영혼까지 사랑으로 결합되니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 것이다.

끔찍한 살인범은 없었지만, 대신에 끔찍한 과거가 숨을 조이듯 책을 읽는 내내 괴롭혀왔다. 과거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미래로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사로잡힌 그들은 결코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다. 얼음 안에 있는 것은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지만, 결코 우아한 주름을 가질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카밀라 레크베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차가운 얼음 위에 서있는듯 소름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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