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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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스무살, 가장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날 시절.
하지만 마해금과 그의 친구들이 지나온 80년대 광주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권력은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힘없는 민중은 폭력앞에 말없이 쓰러져갔다. 멀쩡한 사람이 어느순간 총에 맞아 죽어가던 그 어느 날, 스무살 청춘들이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그 시절을.

헌혈하러 가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에 죽어간 경애. 그런 경애를 바로 코앞에서 떠난 보낸 아픔에 자신도 역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수경.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방랑을 선택한 승희, 어렸을때부터 세상에 대해 모든것을 책임져야했던 만영, 대학생이지만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의 현장으로 뛰어든 정신과 승규, 그리고 대학생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태용.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청춘들의 이야기.
친구가 억울하게 죽어갔어도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게 너무나 이상하다고 말하던 수경은 결국 죽음을 택한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 이상해서, 그리고 혼자서 흔들리는 자신이 이상해서.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때가 되면 배고 고프고, 즐거우면 웃는게 싫어진 해금은 마냥 가슴이 아프다.

누가 웃지 말라고 해서 웃지 않는 것은 아닐진대, 꼭 누군가 웃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어쩌다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치 행복한 순간에도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혹시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내 집 창 밖에 지금 누군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노심초사해야만 겨우 안심이 되는 이 못 말릴 습성이, 노인네들처럼 온갖 세상 근심걱정 다 떠안아야만 겨우 내가 사람 노릇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딱한 습벽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마음껏 웃지도 못하던 스무살의 어느 날, 그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그 시절을 이어간다. 시대와 시절을 탓하며 기꺼이 어긋난 길을 선택한 그들이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스무살이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스무살들은 절대 알지 못 할 그날들을 말이다.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내 갈길만 가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 대신, 나라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는 해금과 수선화회 멤버들이 훨씬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건 왜일까.

사랑을 하는 설레던 순간조차 마음껏 웃지 못하던 시절이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아름다웠다.
아직 흔들려도 아름다운 그들의 스무살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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