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식기장 - 제15회 한무숙문학상 수상작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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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첫장을 넘길 때의 마음은 설렘 반, 우려 반이다.
나와 맞지 않는 글과 문장을 만나면 조각조각 떨어진 이야기들을 읽어내기가 고역이다. 반면에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면 설레는 마음에, 기분이 한없이 둥둥 떠오른다. 다음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어떤 사람들이 등장할까, 어떤 전개가 펼쳐질까.....

이현수님의 '장미나무 식기장'은 오랫만에 설레면서 읽은 단편집이였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실려있는 생명력이 어찌나 가슴깊이 와닿던지. 손에 잡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쭉 읽어내려갔다. 

'장미나무 식기장'에는 여러 여성들이 존재한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흔하지 않다. 과부들만 존재하는 가문에서 오로지 홀로 '호주'라는 짐을 짊어져야 했던 그녀. 그녀는 집에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자신의 어머니나, 엄하기만 한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집안이, 그리고 호주제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추풍령)  남편 잡아먹었다는 오해 속에서도 여장부처럼 집안을 일으킨 어머니는, 오래된 책상을 떠나보낼때는 끝내 눈물을 보인다.(장미나무 식기장) 오랫동안 자신의 후처 신세를 상담했던 옆집 여인이 돌연 죽음을 맞이한 어느날, 그녀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음을 후에 집에 들어온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듣게 된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병신' 어머니의 그늘이였건만 자신의 딸이 귀 두개 달린 병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딸과 남편을 버린 그녀는 후처에게 머리 숙이며 그렇게 자신의 모정을 나타낸다.(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식기장을 열 때마다 텁텁하고 쌉싸래한 감나무숲의 냄새가 난다. 이 식기장이 있는 한, 불에 타 없어진 책상과 함께 우리가 거쳐온 여러 집들과 그 집에 얽힌 역사와 소소한 일들을 나는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번개가 치듯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기억하자면 그들도 대책없이 큰 책상이나 수퉁스런 장미나무 식기장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떠나온 집이 나를 짓고, 장마재 출신의 책상이 아버지를 짓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지은 그 집들이 전부 불에 타기 전에.
(장미나무 식기장 中)

우리 마음속에 누구나 장미나무 식기장을 가지고 있으리라. 정성들여 예쁘게 지은 장은 세월이 흐르면 이리저리 뒤틀리며 결국 불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불타기 전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세월은 불타면서 사라지는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깊게 깊게 가라앉는 것이다. 아마, 책에서 이야기에서 전달하고자 한 이야기는 바로 그것 아니였을까.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읽을 좋은 책을 만나게 되서 너무 감사하다. 작가님의 말(?)대로 책 값이 전혀, 전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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