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견딜 수 없어! - 아지즈 네신의 유쾌한 세상 비틀기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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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직접적으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말하는것 보다 에둘러 말하는게 더 효과적일때가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귀를 막아버리고 안듣게 되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나 옛날 이야기에 빗대어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자기 이야기인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듣다가,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풍자와 해학일 것이다.

아지즈 네신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에 11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바로 다음장으로 넘어가기 보다는,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는 이야기속 사람들처럼 앞을 보지 못하고, 내 발밑만 보고 있는건 아닌지....라는 깊은 생각들 말이다.

'행복한 고양이'에서는 자신이 만든 원 안에 갇힌 사람들이 나온다. 내가 그린 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우습기 보다는 나 역시 내가 그린 원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평온한 나라'에서는 통치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들이 그려졌다. 입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통치자도 문제였지만, 그 통치자에 맞서지 못하고 연기속에 스러져간 국민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 평온한 나라는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 보았다.

또한 '아, 우리 당나귀들'에서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끝까지 외면하다가 늑대에게 잡아먹힌 당나귀가 등장한다. 아지즈 네신은 책의 말머리에 이렇게 밝힌다. "진실을 외면하고 눈앞의 이익만 쫒아가는 지식인들을 풍자하기 위해 썼다." 과연, 지식인뿐만 아니라 현실의 우리들도 생각해볼 문제다. '쥐들은 자기들끼리 잡아먹는다'는 꾀를 낸 관리인이 쥐들은 우리안에 잡아넣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약한 쥐부터 잡아먹더니 결국 자기 동족을 잡아먹는 포악한 존재가 된다. 쥐들의 포악함이 쥐에게서만 국한될까?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쥐처럼 포악한 존재일 것이다. 동료의 의미는 없어진채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관계만 남아 포악함만 남은 곳-그곳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닐지 돌아보게 된다.

아지즈 네신이 책을 썼을 무렵의 터키는 격동기를 지나고 있었다. 불안정한 현실을 이야기속에 담아내며 저자는 소망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이야기속에 담긴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고, 정신 차리기를. 사람이 동물과 다른것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이야기를 이야기로만 끝내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뜻을 찾아내서 반성할 수 있다면 아지즈 네신의 풍자와 해학은 성공한 것이리라.

책을 읽으며 현재를 생각해보았다. 우리 역시 통치차의 검은 입김으로 고통받고 있다. 여론을 조장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부패한 정부 관료들과 언론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평온한 나라처럼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나부터 행동하고 움직여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지즈 네신이 바랐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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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u 2009-06-3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용~~~한 턱 쏘세요!!^^

poison 2009-07-0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러게요~~한 턱 쏴야할 거 같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