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시절]의 서평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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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절 ㅣ 문지 푸른 문학
다치아 마라이니 지음, 천지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평점 :
책을 읽다말고, 표지속 무표정한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알 것만 같아' 웃는것도, 우는것도, 싫은것도 아닌 그저 무표정한 소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는 그녀의 무관심이 나를 책 속으로 이끌었다.
엔리카는 캄캄한 어둠속을 걷는 소녀다. 아버지는 생활을 돌보지 않고 새장 만드는 일에 미쳐있다. 생활을 책임진 어머니는 늘 피곤한 모습을 보이다 어느날 폐암으로 세상을 등진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엔리카를 그저 잠자리 파트너로만 여기고 필요할때만 부르고, 세상 남자들은 엔리카를 그저 한 번 품어보고 싶은 쾌락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집에서도, 세상에서도 엔리카가 설 자리는 전혀 없다.
원치않는 임신과, 원치않는 남자들과의 잠자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방황속에서도 엔리카는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한다. 방황의 밑바닥에는 언젠가 푸석하고 기운없는 어머니처럼 찌들고 우울하게 늙어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는 엔리카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방황하면 안된다고. 그럴수록 더욱더 기운을 내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판에 박힌 말이 엔리카에게 도움이 될까? 어둠속에 길을 잃은 사람에게 말로만 방향을 설명하면 결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엔리카에게 필요한건, 결국 한 줄기 빛일 것이다.
무책임한 아버지, 무책임한 남자친구, 사랑에 목말라하는 백작부인, 장례식을 도와주는 척하며 어머니의 물건을 훔쳐간 윗집 아주머니등 엔리카는 방황의 시절에 여러 사람들을 경험하고 겪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발견한다. 비틀거리며 방황하던 시절을 끝내고 자신에게 비친 한줄기 빛을 향해 걸어가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가난한 여자 고등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란, 어쩌면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애써 빛을 향한 엔리카가 다시 방황을 시작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덮는 그 순간 희망을 발견한 것은, 방황의 시절에 엔리카가 자신을 늘 되돌아보고 되돌아봤다는 점일 것이다. 방황의 시절은, 그렇게 엔리카에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방황의 시절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엔리카는 그녀만의 방황을 끝내고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게...소리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어리고 가난한 소녀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었다. 그녀가 방황의 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과 상황들이 가슴속에 와닿았다. 결국 그녀가 잘 이겨내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청소년들. 나만의 고민이 제일 커보일 시기지만, 남의 고민도 한 번쯤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비가 오기 시작했다. 훈훈한 기운과 함께 빗방울은 듬성등성 인도 위로 떨어졌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곧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날 것이다. (p.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