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걷다'라는 행위에 몸서리치게 반대하던 것이 바로 나였다. 가까운 곳이면 몰라도, 뭐하러 걸어?? 지금이 얼마나 빠른 세상인데. 자동차나 비행기만 타면 지구 반대편까지 몇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거기다가 몸도 편한데. 나는 이미 '빨리, 빨리' 병에 걸려있었다. 무엇이든 빨리해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 가야하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조급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다 몸에 먼저 신호가 왔다. 아픈 몸을 추스리면서, 무언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리한 운동은 힘들것 같고...모두가 추천한 것이 천천히 걷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는 나에게 새로운 풍경을 가져다주었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주위의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주변 풀숲의 작은 꽃앞에서는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감상할 줄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따위의 한심한 생각은 한켠으로 치워두고 걷기가 내게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걷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걸을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었더랬다. 도보여행을 꿈꿨지만 엄두도 내지 못한것이, 죽일듯이 달려드는 차들과, 심각한 매연 그리고 여자 혼자서 가능할까라는 소심함이 도보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잡아끌었다. 모두들 그렇듯이 산티아고를 꿈꿨지만, 직장에 매인 직장인에게 몇 달의 시간을 내기란 무리였다. 그러던 중에 <제주걷기여행>을 만났다. 서명숙이라는 씩씩한 저자와 함께.

그녀 역시 삶과 일에 치이던 평범한 여자였다. 하지만 남은 건 공허한 마음 뿐이였다. 나처럼 말이다. 결국 그녀는 산티아고로 떠나고 길 위에서 또다른 길을 만난다. 바로 아름다운 고향, 제주의 길 말이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제주도는 한라산만 다녀오면 모든것을 다 봤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러니까. 하지만 제주 올레길은 다르다. 시시각각 풍경이 변하고 바다의 색이 변한다. 바람이 귓가를 간지럽히고 햇살은 따뜻하다. 발바닥을 아프게 하는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푹신한 흙길이라 걷는 내내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 가까운 제주도에 그런곳이 있다니. 상상만해도 너무나 즐거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은 제주 올레길로 달려가 그곳을 걷고 있었다. 제주 올레를 걸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은 이들의 사연은 꼭 내 얘기인것만 같아 오래도록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간세다리'가 되어 아름다운 제주 올레길을 놀멍 쉬멍 걸어보고 싶어졌다. 바쁜 일상속에서 다친 마음을 제주 올레는 호오호오~불어가며 치유해줄것만 같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길은 조급병에 걸린 우리 모두를 느림의 세계속으로 끌어안아 치유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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