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낮과 밤, 선과 악, 밝음과 어둠처럼 세상 모든것이 이분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밤은 노래한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모호한 경계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하지만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

식민지 시대의 사람이지만, 일본회사에 고용되어 측량기사로 일하던 김해연. 그는 아름다운 음악교사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사랑에 빠진 김해연은 밝은 빛 속의 세상만을 보며 행복한 앞날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정희는 자살하고 그는 간첩으로 몰려 심문받게 된다. 그리고 김해연의 발 아래 존재하던 단단한 세상은 모래처럼 허물어진다.

어둠속으로 빠진 김해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속의 광풍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의심하여 끝내 비극속에 던져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민생단 사건'은 그저 식민지 시대의 한부분으로 치부하기에 수많은 오류와 어둠을 내포하고 있다. 적이 아닌 아군의 손에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의 사연마다 눈물과 한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차마 이해 할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는 그 어두운 눈물과 한숨.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김해연은 나와 함께 어둠의 세계 깊숙한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둠이라 하나, 실상 그 곳은 빛과 어둠이 함께, 혹은 어둠만, 혹은 모호한 경계만 존재한 곳이였다. 그런 곳이기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도덕이란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만이 알 수 있는 것이오. 일단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의 도덕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잔혹한 일들을 혐오하게 될 수밖에 없소. 변화를 멈춘 죽은 자들만이 변화하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건 정말 구역질이 나는 일이오. 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힘이 더 센 존재요. 나는 잔인한 세계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잔인한 세계 속에서도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됐소. 인간이 성장하는 한, 세계도 조금씩 변하게 마련이오. 그런 인간의 힘을 나는 믿었소.>

서로를 의심하는 곳, 사상과 사상이 맞물리며 부딪치는 곳, 나의 진심이 왜곡되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곳, 옆사람이 죽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곳...그곳이 어찌 민생단 사건이 일어난 만주에만 국한될까 싶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 역시 그런것을. 1930년대의 만주나 현재의 내가 살아내는 시대나 잔혹하기엔 마찬가지다. 박도만의 말대로 변화하는 인간은 잔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장의 대가라면, 나 역시 인간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진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또 질문해보았다. 경계 밖에 속해있던 그들의 삶이 내게는 나 자신에 대해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했다. 한 꼭지가 끝날때마다 깊은 생각에 잠겼다. 결코 쉽게 읽지 못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나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밤은 노래한다. 흥얼흥얼 읊조리는 노래. 그 노래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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