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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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친구 한 명이 자살한 적이 있다. 흔히 자살하기 전에 여러 징후들을 보인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일언반구 아무말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헤어질 때 미소를 보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었냐고 수없이 물어봤지만 대답해주지 않는 그 친구를 원망하면서.

하지만 어나더 힐에서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있다. '히간'이라는 특별한 기간동안 어나더 힐에는 '손님'들이 찾아온다. 그렇다. '손님'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신, 유령을 뜻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접하는 유령과는 차원이 틀리다. 히간중에 찾아오는 손님은 전혀 괴기스럽지 않다. 그저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어떤 이름 모를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손님인 것이다. 만질수도 있고 볼 수도 있는 손님에게 굳이 차이점을 둔다면 '손님'은 이미 현세에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란 것은 늘 그렇다. 몇 월 몇 일 몇 시에 죽는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로 죽을수도 있고, 자다가 죽을수도 있다. 죽음은, 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찾아온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그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해주지 못한 말이 너무나 많다는 것, 해주지 못한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리라. 단 한 번 만이라도, 그 사람을 만나 내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그 소원을 어나더 힐의 히간 중에서는 이룰 수 있다.

학자인 '준'은 먼 친척의 도움을 받아 히간에 처음 참여하게 된다. 바깥세계에서 어나더 힐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사기이거나 혹은 미신이거나. 하지만 죽은 친척이나 동기간을 만나기 위해 '히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v.파 출신은 항상 '손님'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호기심이 왕성하고 추리능력도 왕성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이번 히간은 이상한 이들이 많다. 바깥세계의 살인마 피투성이 잭이 어나더 힐에도 침투했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소문 때문이다. 어나더 힐의 입구인 대도리이에 매달린 피투성이 시체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이야기는 신비스러운 판타지에서 피투성이 잭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로 서서히 넘어간다. 그러면서 온다 리쿠는 각 장, 각 장마다 공포의 장치를 심어놓았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손님이라던지, 히간에 함께 참여한 지미의 죽은 쌍둥이 동생 테리의 공포스러운 출현등이 바로 그런것이다.

히간중에 나타나는 온갖 이상한 상황속에서도, 어나더 힐만의 특수한 전통, 즉 갓치(정령이 범인을 잡아내는 의식)라던지 햐쿠모토가타리(밤새 기담을 이어가는것)등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추리소설의 백미인 흥미진진한 전개는 없지만, 온다 리쿠만의 특유한 이야기 전개법과 각 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름돋게하는 단서들은 충분히 책 속에 빨려들게 한다.

<죽음이 잔혹한 것은 불시에 찾아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모든 것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한두 마디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제대로 인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유족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 이렇게 제대로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자기는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그런 기회가 약속되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거실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들 수 있는지 모른다.>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장점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을법한 상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죽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거쳐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그 곳, 어나더 힐. 그 상상만으로도 온다 리쿠가 그려내는 그 곳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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