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코네로가의 영원한 밤
플라비오 산티 지음, 주효숙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1786년부터 1788년까지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지중해 섬 시칠리아에서 한 달을 머문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1775년 초고를 시작해 10여 년 가까이 쓰지 못하고 있던 '파우스트'를 마침내 완성하는데, 지중해의 작은 섬 시칠리아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는 그 작품을 끝마칠 수 있었을까?

귀족들의 이야기에 질린 괴테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선술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얼굴에 흉터를 가진 어떤 남자를 만난다. 그는 어두운 숲안에 자리잡고 있는 보스코네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말한다. 깊고 깊은 숲속에 자리한채, 소문만 무성한 그 남작의 집안에 대해서 말이다.

남작의 집안은 대대로 광기가 대물림되던 집안이였다. 아버지 루시퍼는 결국 장남인 아담의 손에 머리가 갈려 죽게 된다. 장남 역시 정신병원에 갖히게 된 후, 차남인 페데리고가 집안을 이끌게 된다. 하지만 그 역시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수면발작증과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 엄습하는 잠과, 멀어져가는 기억과 싸우며 그는 어떤 일련의 '심오한 징후'와 마주하게 된다.

여름을 지내게 위해 들른 팔레르모엔 기후부터 이상하다. 한여름의 태양이 작렬하는 가운데 눈이 내린다. 7,8월에 내리는 눈...그렇기에 그 눈은 이상한 징조를 뜻한다. 페데리고는 멀어져가는 잠 속에서도 자신의 어린시절 가정교사 텔라모니오를 찾는데 그가 늘 들려줬던 한 구절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삶은 피를 먹고 산다..."

그리고 팔레르모에는 최근 벌어진 온갖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인간의 소행이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들. 불탄 여자아이의 머리, 공포에 질린 검은 눈과 움푹 패인 콧잔등에 상체만 남은 몸통,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 여섯 구, 자기 가족을 살해한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까지...그런 끔찍한 살인사건을 들으며 페데리고는 자신의 가정교사를 찾아 헤맨다. 그를 찾으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얼굴에 흉터가 난 남자는 괴테에게 페데리고와 일련의 끔찍한 살인사건들, 실종사건들을 전하며 어떤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어쩌면 그 모든것이 뱀파이어나 흡혈귀에 의한, 악마에 의한 짓일 거란것을. 괴테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살인자만 잡으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괴테를 초대하기 위한 페데리고의 작업이였다.

늘 기억상실에 시달리는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그는 자신의 지옥으로 괴테를 초대한다. 그리고 끔찍한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답을 주기 시작한다. "삶은 피를 먹고 산다"는 말과 함께.

그저 사람들의 피를 갈구하는 흔한 뱀파이어의 이야기도 아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낸 끔찍한 소문도 아니다. 그건 실재했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페데리고의 초대를 받아들인 나 역시 오들오들 떨면서도 지옥의 안까지 들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악은 우리 가운데에 존재하고 아무도 이를 떨쳐버릴 의도가 없다'고 괴테는 마지막 음성으로 고백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심오한 징후, 악의 기운, 끔찍한 살인사건들 모두 어쩌면 괴테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악의 일부분은 아닐지...보스코네로가의 밤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악 역시 선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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