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앞이 흐려진다. 가슴이 마구 뛴다. 흐려진 눈을 깜박이니 눈물이 또륵 떨어진다.
'로드'는 그렇게, 내 가슴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그 길 위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세상은 마지막 끝을 향해 처참히 내달리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혼란스러운 재투성이 길 위에 서있고 무조건 걷고 또 걷는다. 그들이 다다르는 너머엔 진실이, 그리고 선이 존재할것이라 믿으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 세계는 이미 신으로부터 버려졌다. 불길이 휩쓸고간 그곳엔 말라붙은 시체들이 가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약탈을 시작했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죽임 당하는 그 곳. 그래서 아버지는 앞뒤, 좌우를 매번 주시하고 살핀다. 죽음의 길에서 발견하는 사람의 흔적은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겐 아들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그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또 살아내는 것이다. 매번 막다른 길까지 다다르고, 메마른 기침을 뱉어내고, 약탈자들의 무서운 눈초리를 피하면서 아들을 품속에 끌어안는다. 아버지에겐 아들만이 살아갈 이유이자 살아남은 이유이다.

재난 영화나, 세상끝에 매번 등장하는 '영웅'따위는 길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누군가, 혹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무엇인가가 그들 부자를 돌봐주길 바라지만 재투성이 길위에 '영웅'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마음깊은 곳의 영웅을 불러야했지만, 마음속에서 불러낸 영웅은 번번이 부자를 배신했다. 신까지 등을 돌린 그 길위에 그들은 서로의 체온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절망과 눈물뿐인 재투성이 길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나는 ''을 보았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것을 매번 간청한다. 길에서 발견한 작은 아이, 늙은 할아버지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럴 여유가 없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들을 도와주자고 간청한다. 마치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죽음의 고비에서 발견한 먹을것조차, 그것을 남겨둔 사람들을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앞에서 나는 선을, 그리고 신을 보았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살아내는 인생 또한 '로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곳 역시 보이지 않는 불길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고 죽이는 길, 세상. 그런 곳이지만 신은 우리에게 늘 남을 먼저 돌보라고 말한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이웃을 먼저 생각하라고 한다. 죽음의 냄새에 숨이 턱까지 막히더라도 아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던 아버지처럼, 우리 역시 뒤도 돌아보기 싫은 그 길위에 버려진 사람들을 뒤돌아보고, 도와준다. 죽어가는 세상이지만 '선'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것이 희망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세상의 끝과 절망뿐인 그곳은 분명 숨막히게 불쾌하고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고두고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피어난 선이야 말로, 가슴 속 깊이 패이도록 와 박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지켜냈다.
이젠, 내가 내 아들을, 선을 지켜낼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