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두고 온 또다른 내가 있다.

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가 사는 이곳외에 다른 세상이 있지 않을까하는.
물론, 엉뚱한 상상일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듯이, 내가 보는 세상의 건너편, 혹은 어떤 선을 경계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천둥의 계절은 그런 나의 상상을 읽어내기라도 하듯이 온穩이라는 미지의 마을로부터 출발한다.

그 곳은 이 곳과 똑같은 세상일수도, 혹은 상상으로만 떠올리는 미지의 세계일수도 있다. 그곳에는 겨울과 봄 사이에 천둥계절이 존재하는데 신의 계절이기도 하다. 천둥계절엔 묵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 또한 사람들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겐야는 천둥계절에 누나를 잃고 만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다.

겐야는 외톨이처럼 온穩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후에 떠올려봐도 '참 행복했어'라고 미소 지을만한 따뜻한 추억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천둥계절에 누나가 사라지고 대신 바람와이와이가 겐야와 함께 했고, 무언가 다른 존재가 몸에 들어온 겐야는 운명을 받아들이듯 온穩을 떠나 원래 자신이 살던 세상을 향해 몸을 내던지게 된다.

나약했던 겐야는 마물로만 여겼던 바람와이와이와 함께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한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친구도 다시 찾게 되고, 원래 자신이 살았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 홀로 남겨지지만 한뼘 성장한 겐야는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천둥의 계절'에는 여러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화법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한 가지 사건으로 만나게 되고, 그들 모두가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매듭이 스르르 풀리게 된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현실 세계와 환상세계를 적절히 맞물리게 만들었고, 각 인물들의 만남과 사연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만큼 치밀하게 짜놓았다. 그래서 한동안 천둥의 계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고, 혹은 실제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사실과 인물들이 천둥의 계절에 등장한다. 책 속에서 또다른 나를 만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책을 들춰본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성장통을 겪듯, 겐야도 성장통을 겪었다. 아마 겐야의 성장통은 천둥의 계절이 아니였을까 싶다. 매서운 겨울에서, 모든 것이 따사로운 봄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존재하는 천둥의 계절-봄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걸 알려주는 천둥 계절이 있는 것처럼 겐야 역시 성장하기 위해 혹독한 신고식을 치뤄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둥계절을 잘 이겨낸 겐야는 또다시 홀로 남겨졌어도 더 이상 나약하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겐야는 한 뼘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장을 덮는 순간, 겐야의 웃는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어느새 온穩으로 날아가 바람의 정령 와이와이를 만난다. 오래오래, 이 환상의 도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