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靑衣)
비페이위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놀랍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 있을 수 있다니.
비페이위가 만들어낸 이야기와 아름다운 문장들이 내 가슴속에 흘러 들어온다. 책을 덮고나서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마음 속 감정들을 겨우 추스른다. 작가에게, 기립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청의'안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어찌 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하나로 통하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청의'에서 그리는 샤오옌추는, 한 인물이 비극속에 사라진다는 점에서 내 가슴속에 깊이 박혀 버렸다. 비페이위의 아름다운 문장은 오히려 그녀를 더 아프게 만들 뿐이였으니까 말이다.

'청의'에 등장하는 샤오옌추는 아름다웠다. 가슴 속 뜨거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는 아름다운 청의 역을 맡았지만 그녀의 삶은 청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샤오옌추는 재능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였음에도 자신의 아집과 욕심으로 인해 외로운 항아처럼 세상과 멀어졌다. 점점 사그러지는 그녀를 보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예술가로서 필요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 애착은 그녀를 꽁꽁 옳아매었다. 파멸로 가는 길, 소리없이 스러지는 그녀는 진한 핏방울을 하얀 눈사이로 방울방울 흘려보낼 따름이였다.

'청의'의 샤오옌추, '추수이'의 펑제중, 그리고 '서사'에 등장하는 린캉까지 그들은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앞에 꿈틀거리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그들 역시 변해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아닐까? 일본의 침략과 함께 변해가는 시대상은 그들을 표독스럽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만 유리하도록 만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을 비페이위는 섬세하고도 깊은 심리묘사로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인간의 욕망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기에 무한하고 끝없는 우물처럼 느껴진다. 그 안을 들여다보기란 무척 힘든 일일 것이리라. 비페이위는 그 우물안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처럼 치밀한 묘사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의 거대한 역사와 함께 흘러가는 인간의 욕망을 그린 '청의'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치밀한 심리묘사로 나를 오싹하게 만든 비페이위.

-샤오엔추는 얇디얇은 무대 의상 하나만 걸친 채 눈보라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극장 정문 앞으로 나온 그녀는 가로등 아래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눈이 내리는 큰길을 한 번 쳐다본 후 스스로 박자를 세고 피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황을 부르고 있었다. 눈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극장 앞으로 수많은 사람과 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청의에서 샤오엔추가 보여준 마지막 몸짓은 아마 꽤 오랫동안 내 뇌리속에서 떠나지 않을것만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5-27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ison 2008-05-2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용^^*
감동의 물결이 차르르륵~~~밀려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