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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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다. 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 속 신혼 첫날밤과는 달리 이 둘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긴장하며 딴 생각에 잠겨 있다. 플로렌스는 섹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에드워드는 능숙하게 첫날밤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으로.

서로 모르는 연인들의 결합은 늘 그렇듯 경외롭고, 신기하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역시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 그리고 대학 시절을 되짚어가며 그들의 만남을 우연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만들어갔다.

에드워드는 학교 교장인 아버지와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발작과 공황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며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만 대신 속마음을 감춘 채 집에서 떠날 날만을 기다리게 된다. 내면의 폭력을 밖으로 표출하기도 하며 십대 시절을 보내고, 대학시절에는 선술집에서의 조잡한 대립과 역사학에 빠져 지낸다. 에드워드는 일렉트릭 블루스를 즐겨 듣는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다.

플로렌스는 늘 모든 면에서 정력적으로 움직이는 아버지와 신경질적이고 차가운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는 따뜻하게 플로렌스를 안아준 적 없지만 플로렌스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가족 때문에 상처 받을때는 밖으로 휙 나가버릴 뿐, 절대 가족에게 일언반구 말을 꺼내지 않는다. 조용한 성품의 그녀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만은 달라지는데 음악적 견해에 있어선 자신의 의견을 똑바르게 내놓고 팀원들을 이끌어가는 팀장의 성격을 확실이 내보인다. 그녀에게 있어 취미생활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두 남녀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조용히 속삭이고, 은밀한 장소에서는 키스를 나누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깊숙한 곳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목에 이르는 부분까지 단추를 꽉 끼운 보수적인 시대처럼, 그들 역시 사랑에는 빠지긴 했으되 서로의 내면에깊숙이 빠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첫날밤은 삐걱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체실비치에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었고, 끝낼수도 있었다. 그들은 아직 진짜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있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시작처럼 끝 역시 불완전했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서투른 사랑은, 서투른 관계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서투른 사랑은 '...했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후회로 남아 오래도록 상대방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체실 비치는 수 천 년 동안의 폭풍으로 마치 체로 쳐서 골라낸 듯한 조약돌이 십팔 마일에 걸쳐 크기별로 깔려 있다. 그들도 이기적인 마음대신, 상대방의 내면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면 아름다운 체실 비치를 함께 걸을 수 있지 않았을까. 수 천 년 동안 폭풍속에 시달리며 매끈한 몸체를 만든 조약돌들이 연인들에게 삶을 인내하는 방법과 사랑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들려줄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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