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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왕의 전설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권미선 옮김 / 평사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킨다의 왕자, 왈리드 입븐 우이르 왕자는 태어나면서 축복받았다. 왕자는 젊고, 잘생겼고, 능력있으며 학식 또한 풍부했다. 왕국을 이어나갈 사람으로서 충분한 자질을 가졌다고 뭇사람들에게 인정받았고 그 역시 왕국을 사랑하며, 왕국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인정받던 왕자는, 양탄자를 짜서 살아가는 초라한 사람에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킨다 왕국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은 뒤, 유카쓰에서 열리는 시 경연대회에 참가해서 최고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고 싶었는데 뜻밖에 양탄자 짜는 '함마드 입븐 알 다드'에게 세 번씩이나 패배한 것이다.
항상 최고라고 칭송받던 왕자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함마드를 영원히 괴롭히겠다고 다짐한다. 속좁게 자신만 생각하던 왕자는 이 다짐으로 인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가게 된다. 가족과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함마드는 왕자의 질투심으로 인해 궁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되고, 결국 자신의 모든것을 담은, 그리고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긴 양탄자 한 장을 남긴 채 죽어버린다.
양탄자를 본 왕자는 후회로 몸부림친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둑에게 빼앗긴 양탄자를 찾기 위해 사막의 도둑으로, 베두인족의 목동으로, 아랍의 부유한 상인으로 여러 삶을 살며, 양탄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똑바로 주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예전의 왕자는 좁은 궁전에 갇혀 자신이 최고인줄만 알고 살았다. 하지만 세상의 넓은 곳으로 나가 여러 사람의 삶을 겪어보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의 운명은 양탄자를 찾아 함마드에게 속죄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번번이 지금의 삶에 익숙해지면 잊어버리곤 했었다. 하지만 양탄자와 함마드는 늘 왕자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었고 양탄자를 찾아가는 여정속에서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왈라드는 더 주의 깊게 양탄자를 들여다보며 길 하나하나를 훑어보았다. 그러면서 그 길이 처음에 바랐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많은 경우에는 그 길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뜻하지 않은 일로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지만, 왈리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에는 개개인이 자기네의 꿈과 의지를 접지 않으면 처음에 가고 싶었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왕자는 자신의 운명을 탓하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려고도 했었고, 다른 편안한 삶에 젖어 운명이 흘러가는대로 놔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깨닫는다. 운명은 한 가지 길만이 아닌 여러가지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묵묵이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운명은 찬란하고 밝은 길을 준비해준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때때로 내 자신에게 묻곤 했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애쓸 필요 없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떠돌이 왕 왈리드, 아니 말리크는 말한다. 뭇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나도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 그 미래를 똑바로 바라보며, 운명이 나에게 열어 준 여러가지 길로 묵묵이 나아가 나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다. 떠돌이 왕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