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매력적이기에 위험한 가시를 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젊음은 나름의 비밀을 가슴속에 떠안고 있기 마련이다. 자칫, 가시를 잘못 내보이면 오히려 자기가 다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햄든' 대학으로 오게 된 리처드. 리처드에게 햄든은 자신의 뻔한 미래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그리그 그곳에서 고전학과 교수 줄리언과, 비밀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고전학과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다른 학생들과 섞이지 않고, 오직 자신들끼리의 연대감만 돈독히 다지는 그들.

리처드는 고전학과, 줄리언,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들과 어울리길 바란다. 그리고 리처드의 소원대로 고전학과에 들어가 그리스어를 공부하며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검은 옷을 항상 단정히 차려입고, 매사에 냉정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헨리와 보는 것 자체로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쌍둥이 남매 찰리와 커밀러, 빨간 머리에 친구 좋아하는 프랜시스와 무슨 말이든 툭툭 내뱉기 좋아하는 버니를 만나 리처드는 한층 성숙해져간다.

책의 처음 시작에도 밝히 듯, 비밀의 계절의 프롤로그는 '살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 역시 언급된다. 하지만 그들이 왜 살인에 이를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며 각자의 심리묘사에 집중하다보면, '살인'이라는 사건보다는 그들의 '심리'에 더 주목하게 된다.

'버니'라는 큰 굴레에서 벗어난 그들은 '자기 자신'이라는 더 큰 굴레에 묶이게 된다. 어차피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만의 상처만 들여다볼 줄 알고, 남의 입장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는 버니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해서,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우수수 금이 가버린다. 영원한 비밀이 없듯, 영원한 우정과 영원한 포용은 없었던 것이다.

추억, 혹은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그 실체만 바꿔 우리의 곁을 떠다니는 유령들. 리처드는 버니라는 추억의 유령을, 헨리라는 무의식의 유령을 곁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구술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천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책의 저자 도나 타트. 그녀는 치밀하고 섬세한 표현력으로 단지 책을 읽을 뿐인 나를 '햄든'의 조용하고, 때로는 시끄럽고, 그리고 비밀스런 장소로 옮겨다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리처드가 되기도 하고 헨리가 되기도 하고 버니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가슴을 열 수 있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나의 젊음에 대해. 그리고 나의 관계에 대해. 나 역시 젊음이라는 마약속에 빠져 갈피를 못잡고 여기저기 헤매기도 하고, 믿었던 친구에게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보기도 했다. 그래서 책의 서술자인 리처드만큼은 아니지만,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 되었다. 누구든 자신만의 '비밀의 계절'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리처드처럼 가슴 깊숙한 곳의 비밀이든, 아니면 수면위에 가볍게 떠오르는 비밀이든 자신이 간직한 비밀이란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도나 타트는 누구든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의 계절을 밀도있게 잘 풀어냈다. 그래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비밀이 가득한 햄든의 대학 교정으로, 그리고 나만의 비밀 속으로 날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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