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늙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서로 팔짱을 낀 젊은이들과 숲속의 새들,
저 죽음의 세대들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취해 있고
폭포에는 연어가 튀고 바다에는 고등어가 우글거리니
물고기와 짐승과 새들은 여름 내내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것들을 찬양한다.
모두들 저 관능의 음악에 취하여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모르는구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중에서>
여느날처럼 모스는 사냥을 하러 나왔다. 그러다가 발견하고 만다. 꼭 피해야했으나 피하지 못한 그것들. 몇 대의 자동차, 즐비한 시체, 죽어가는 사람들....그리고 묵직한 돈가방.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할 행운. 그러나 모스는 의외의 상황에서도 담담하다. 조용히 주변 상황을 점검하고, 죽은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리고 돈가방을 챙겨 집으러 돌아온다. 하지만 물을 달라고 말하며 죽어가던 사람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물을 챙겨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고, 돈을 챙겨 편안히 살 수 있는 삶을 뒤로 한 채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돈을 쫓는 또 한 명의 사람-시거. 그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눈을 가졌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동전 던지기에 맡긴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제거한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그의 모습은 눈앞에서 그려질듯 생생한 공포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들을 쫓는 보안관 벨은 각 장마다 나지막한 독백을 뱉어낸다. 그리고 모스와 시거가 거쳐간 자리를 뒤쫓아가며 잔인한 시거에 대한 자신의 무력함, 그리고 모스에 대한 연민을 조용히 독백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시거의 잔인함 앞에는 보안관의 독백은 신기루처럼 사그러지고 만다.
이 책은 돈가방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한 편,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거는 절대악이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있거나, 악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 모스나 보안관 벨의 선함은 너무나 느리게, 그리고 약하게 악에 맞서고 있다.
이 책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스릴러에 그치지 않는다. 시거는 사회의 '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악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감마저 갖게 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역시 이러하지 않을까? '악'인걸 알면서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것-그것을 시거가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선이 악을 이기길 바라는 해피엔딩을...나는 아직도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책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항상 선이 악을 이기지는 못한다. 어떤 면에선 악이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더 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선은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데 악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선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