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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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자 아이를 찾습니다. 도라 브루더. 15세. 1미터 55센티미터.
갸름한 얼굴, 회갈색 눈, 회색 산책용 외투, 자주색 스웨터, 감청색 치마와 모자, 밤색 운동화. 모든 정보는 브루더 부부에게로 연락바람. 오르나노 대로 41번지, 파리
 
팔 년 전 어느 날, 1941년 12월 31일자 <파리 수아르> 3면에서 작가는 우연히 이 기사를 발견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나라면 대충 훑고 지나갔을...평범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기사. 도라 브루더는 과연 누구였을까?
 
작가는 도라 브루더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브루더와 그녀의 가족들, 그녀가 살던 곳, 그녀의 기숙학교 등....그녀가 머물렀던 곳을 직접 거닐어보기도 하고, 지도에서 명칭들을 찾아보기도 하며 그녀의 삶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도라 브루더와 동시대를 살았던-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그녀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를 얻기도 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는 몇 달, 몇 일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브루더 가족이 살았던 암울한 시대가 재조명된다. 끔찍한 전쟁, 독일군의 점령, 수많은 빈민들, 그리고 유태인들....프랑스를 독일군이 점령하면서 유태인들에게도 점점 포위망이 좁혀온다. 경찰서에 거주지를 신고하고, 가슴에 노란별을 달아야하고, 거주지밖을 이탈할 수도 없으며 저녁 이후에 통행금지령까지 내려진다.
 
브루더의 부모 역시 유태인이였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그들은 딸을 기숙학교에 넣지만 타고난 기질이 독립적이고 방탕한 그녀는 기숙학교를 견디지 못한다. 결국 그녀 스스로 기숙학교를 박차고 나온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폭설까지 더해진 가혹하고 암울한 겨울. 그 겨울을 도라 브루더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어쩌면 작가는 도라 브루더와 자신을 동일시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처럼 기억 상실에 걸린 사람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가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며 도라의 삶 역시 재조명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도 도라 브루더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역사라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한 부분도 차지하지 못한 채, 조각조각 바스러졌다. 끔찍한 역사의 진실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져야 할 문서처럼 파기되었다. 그런 그녀를 파트릭 모디아노는 자신의 글로 되살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지워버리고 싶은 옛 기억(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도라와 함께, 그리고 끔찍한 역사와 함께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월이 지나도, 억만년의 세월이 지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존재한다. 모두가 잊더라도 나만은 기억해야 할 진실과 추억들...그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도라 브루더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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