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 - 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
스티븐 데이비스 지음, 이경하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자메이카는 아름다운 나라 중 한 곳이다. 특히 밥이 태어난 세인트앤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속에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그 속에서 밥 말리가 태어났다. 첫 노래의 시작은 울음이였다고 말했을 정도로 노래엔 슬픔과 상처가 담겨 있었다.

자메이카는 카리브해의 아름다은 섬나라로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사실 노예의 역사이고 그로 인한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노예매매시대에 가장 큰 노예 시장의 바탕이 되었던 중간지역이었고 줄곧 노예들에 대한 억압과 희생 그리고 그에 대한 항쟁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그런 고향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밥 말리 역시, 백인의 중년 대령과 10대 흑인 소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머니와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로 반복하며 힘든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때 그를 위로한건 울음처럼 터져나온 음악이였다.

빈민가의 사람들을 위로한 건 음악이였듯이, 그 당시 젊은이에게도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음악이였다. 밥은 친구들과 함께 그룹을 결성해 노래하게 된다. 그 당시 집도 없이 떠도는 밥 말리에게 음악은, 살아갈 유일한 희망이였으리라.

당시 빈민가에는 루드 보이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여기저기 소란을 일으킬때였다. 밥말리와 웨일러스의 단원들 역시 루드 보이들의 정신을 기리며 혁명의 한 틀을 서서히 잡아가게 된다.

1975년 <여인이여 울음을 그쳐요(No Woman No Cry)>가 최초의 국제적 히트곡이 되면서 '혁명가 밥 말리' 의 선전은 절정에 달했다. 이 '혁명' 은 앨범 제목이기도 한 '라스타 혁명' 혹은 라스타주의라고 불렸다. 

라스타주의는 1970년대 중반, 그러니까 좋은 시절이 다 지나고 경기침체와 사회불안이 세계를 뒤덮을 무렵 대안적 사상으로 주목받았다. 정치적 행동주의든, 은둔적 유토피아주의든 '1960년대의 잔치' 가 끝나고 파리만 날리던 시점에서 라스타주의는 흑인운동의 범세계적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밥 말리는 행동주의와 유토피아주의 모두를 체현한 인물이 되었다. 1978년에는 그간의 인도주의적 업적을 인정받아 '5억 아프리카인을 대표하여' UN 평화메달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자메이카로 돌아와 암살 위협을 받으면서도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를 개최하여 게토들 사이의 적대행위를 종식할 것을 호소했다. 1980년에는 집바브웨 독립 경축행사에 헤드라이너로 초대되어 생애에서 가장 영광스런 순간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듬해 신화로 길이 남는 인물의 공통조건인 '요절'로 세상과 하직했다.
 
음악에 저항을 실은 인물 밥 말리, 그가 울음같이 토해내는 음악을 들으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사상에 깊이 빠져보았다. 음악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도 하고, 안식을 주기도 하지만...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음악의 특성상 그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밥 말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시작부터 시작된 울음같은 노래를 자메이카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흔히 포스터에서 볼 수 있었던 웃는 그의 얼굴 뒤에, 얼마나 처절하게 삶을 살아왔는지, 음악을 해왔는지 숨겨진 이면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내게 들려운 음악은, 저항정신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