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금정연.정지돈 에세이 필름 / 푸른숲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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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북리뷰에 평점을 넣으면서 작품의 결이 안 맞아도 별 세 개로 평정심을 잃지 않는 북리뷰어가 정지돈 작가의 ‘…스크롤!’에 빵별과 함께 간략한 쓴소리를 남겨놓았다. 별이 없는 짧은 리뷰가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서 더 읽고 싶어지는 책으로 기억한다. 최근에 좋은 기회로 정지돈 작가의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을 읽었다. 책 제목에서부터 웃기 시작해서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계속 웃었다. 자꾸만 빵별 평점 리뷰어의 쓴소리가 생각나서. 이 책의 두 작가를 만나면 웃음부터 나올 것 같다. 괴짜는 괴짜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들을 혼내며 결국 안 사줬던 아빠가 아들이 잠든 밤 머리맡에 장난감을 두고 가며 흐뭇해하는 뒷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사줄 거면서 나쁜 아빠를 왜 자처하는 건지, 답답하고 어이없긴 하지만 아침이면 아이는 두 배로 기쁘다. 이 책은 나에게 아이가 되길 바라는 것 같다. 두 사람의 농담에 어이없다가도 기다리던 카리스마 썩인 진지함을 만날 때면 멋있어 죽겠다. 아마도 이걸 노린 것 같다.

“— 근데 그게 웃음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지돈 씨가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모양이다.
— 두 종류의 한국 영화가 있습니다. 웃겨서 계속 보고 싶은 한국 영화와 웃겨서 더는 볼 수 없는 한국 영화. 전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후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럼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분명한 건 후자는 배꼽 빠져서 볼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우연과 만남은 영화의 모든 장르를 지탱해 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연한 만남은 우연한 만남일 뿐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건 또 아닌데, 모든 만남은 크건 작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 편의 ‘비천한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제법 높은 확률로…….”

인생의 회전율은 현실 파악이나 자아 발견이 더 쉬운 쪽이 높은 법이니까.

“<스위밍 풀>에서 샬럿 램플링이 했던 말 기억해요? 편집장이 20년 전에 자기를 세뇌시켰던 말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상은 치질 같은 거라고, 모든 작가들이 언젠가는 받게 된다고요. 지돈 씨, 네 번째 치질을 축하합니다.”

너무 맞는 말이라 감동을 까먹었다.

바로 옆에서 대화에 참석하며 이들의 생생함을 느끼는 게 좋았다. 이 책으로 영화라는 섬광을 찾는 일이 재밌고 행복했으며 이해하기 싫은 두 사람도 참 좋았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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