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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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에게는 아이가 동행을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함께 걷다 보니 동행자의 연대감이 마음속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감정의 저울추를 맞추려는 듯 외로움의 자각도 함께 덮쳐왔다. 두 감각이 다 좋았다. 심장이 더해지는 감정들이었다』

10살 여자아이와 외지인 성인 남자라는 설정이 소설의 흐름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그의 마음은 그저 현실에 만족하는 것에 들떠 있었으며 순수랑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클레멘트는 행복, 선의, 낙관주의에 힘입어 발이 땅에서 두둥실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새로운 마을, 때 묻지 않은 곳, 다시 태어난 느낌을 선사하는 이곳에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만끽해 본 적이 없어 너무 들떠 있기도 했다. 쉼 없이 강조되는 주인공의 만족감이 불안을 부추기는 것 같아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언제 터질지 모를 사건을 기다리며 읽었다. 작가의 분위기를 아는 독자로서 누리는 예고의 쓴맛이라고나 할까.

『두 사람 사이의 유대는 공기보다 가벼웠다 완벽하게 개인적이고 상호적인 자유의 연대였다. 심지어 서로에게 해줘야 할 하찮은 심부름이나 의무 같은 부담감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클레먼트에서 선택된 사람들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두 사람만 아는 마음이 있었다. 기쁨이 그들 머리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나 따로 있을 때, 걸어가다가 어떤 오만한 순수의 눈빛으로 사물을 볼 때, 그럴 때만 무심결에 그런 의식을 드러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의 환경에 만족하며 동행했을 뿐이다. 통속적인 말로 코드가 맞았던 거다. 진정한 소울메이트 관계에서 풍기는 어울림 내지는 친밀함이 10살 여자아이와 외지인 성인 남자로 바라보는 주변 시선들은 좋을 리 없다. 그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과거의 버릇인 손톱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해명할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레이디스』 최고로 멋진 아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 / 김선형 역 | 북하우스 | 2022년


단편들 대부분이 페이지를 넘기는데 조심성이 요구되는 아슬한 구간이 많았다. 아니, 평범한 일상을 일부러 불안한 상상력을 동원해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극에 달하는 기쁨이나 만족감을 내세워 뒤이어 오는 작은 악몽에도 놀라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답답함에 갈증을 느낄 때도 있지만 해소를 위한 사유의 여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어 천천히 읽어 나가길 바란다. 하이스미스는 여러 가지 어두운 요소들로 자신의 평화를 망치기를 원했다. 그가 원하는 사항은 소설에서도 완벽하게 드러났지만, 갈망보다 미약한 희망 사항이라는 생각에 평화의 잔상은 잔잔하게 드러난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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